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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 | 밥통 115호

22.04 | 92호밥알단 연대기 | 우리의 밥상도 노동자가 만든 것이거늘 /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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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밥상도 노동자가 만든 것이거늘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의 동지들과 지난 2월부터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 투쟁에 연대했으며, 그에 따라 노조 측에서 진행하는 집회에 참여해 왔습니다. 때문에 이번 3월 16일,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 오십리 걷기>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행진은 평일 오전부터 시작했기에 회사 일을 미루고 참여해야 해서 부담이 조금 되었지만,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도 단 한명이라도 더 참여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어떻게든 시간을 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는 노동자 분들과 이에 연대하는 학생 분들 등, 많은 사람들이 행진에 참여했습니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제 3월, 봄이 되어 이전보다는 확실히 따뜻했기에 아침에도 당당하게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행진 대열은 세종호텔이 76%나 되는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식자재수입유통사, KTSC에서 세종대학교 정문까지 나아갔습니다. 중간 휴식을 하면서 배식 준비를 하고 있는 '밥통' 동지들을 처음 만났는데 저는 연대를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나의 일도 여럿이 협력하면 더 편하게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배식을 돕기로 자원했습니다. 그렇게 도시락판을 깔고 준비해둔 반찬을 넣고 나중에 식사 시간에 뜨끈뜨끈한 국을 배식할 때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시하는 많은 것들, 이 평범한 도시락마저도 모두 노동자가 만들어내는데 왜 오늘날의 노동자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존재 취급을 당하는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도시락 속 반찬과 밥, 국을 요리하는 조리사. 그 음식의 재료를 가공하는 식품제조업체 노동자. 원재료를 생산하는 수많은 농부, 어부, 그리고 축산업자. 이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는 도구와 소모품을 제작하는 공장 노동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운송하고 전달하는 운송업 노동자와 서비스업 노동자. 행진 후 무거워진 발걸음을 이끌고 이 평범하지만 당장은 너무나도 맛있는 도시락을 받는 과정 속에 수 많은 노동자들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호텔에서 하루를 숙박하고 조식을 먹은 후 퇴실하는 과정에도 해당됩니다. 매일 정도가 아니라 상시적으로 청소노동자가 깨끗하게 청결을 유지하는 호텔 로비에서 24시간 순번을 돌아가며 대기 중인 호텔직원들이 손님을 맞이합니다. 손님은 체크인 후 누군가가 퇴실할 때마다 빈틈 없이 청결을 유지하고 비품을 다시 채워 놓은 객실로 안내를 받고 이를 편안하게 만끽을 합니다. 이러는 사이에 호텔 주방에는 예정대로 조식 및 중식 등을 제공하기 위해 요리사 등 수많은 서비스 노동자들이 식재료를 미리 준비하고 다이닝 홀을 청소합니다. 그렇게 다이닝 홀에 손님들이 도착하면 주방에서는 신속하게 손님이 원하는 식사를 제공합니다. 결국 현대 사회의 수많은 것들은 거진 노동자들이 다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세종호텔과 거기서 제공하는 편안함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무시하고 그들의 공을 오롯이 자본가들만의 것으로 돌립니다. 그렇게 하기만 해도 부당하고 억울한데 심지어 현대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은 쉽게 해고하고 대체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점점 퍼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번 투쟁에 참가하는 많은 분들, 그리고 이번 배식에 힘 써주신 '밥통' 동지들은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밥통' 동지들과 다시 만난다면 이런 비정상적인 사고와 맞서 같이 연대하고 투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이상화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상이라는 핑계를 최대한 적게 대면서 노동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