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3.09 | 밥통 109호

2022.08 | 96호밥알단 연대기 | 농성장에서 만난 건강한 어울림, ‘밥통’과의 연대 /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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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에서 만난 건강한 어울림, ‘밥통’과의 연대



안녕하세요? 행복해지고 싶은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정혜진 조합원입니다. 부당해고가 된 지금도 역시나 존중과 사랑, 편안함을 충족해주는 호텔리어가 되고 싶습니다. 

부당 정리해고 통보를 받기 전까지 저는 그저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고, 그래서 매년 성과를 내야 했고, 내가 받는 연봉이 회사에서의 나의 위치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고, 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면서 그런 것들이 행복을 위한 노력인 줄만 알았습니다.


어떻게 하든 구조조정에 맞서 계속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일념으로, 작년 7월 어용노조인 세종연합노조를 탈퇴 해 민주노조 세종노조를 늦게나마 선택했고, 그 선택은 내 삶에서 짜릿한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정리해고 선정 기준과 해고에 맞서, 거리에서 매일 선전전하며, 연대하며, 매주 집회하며, 교육도 받고, 우리들의 투쟁이 정당하다고 씩씩하게 싸우고 있었고, 내가 선택했기에 넘치는 행복감을 만끽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몹시나 당황스러운 심한 우울감으로 저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늘 내 편이길 바라는 사랑하는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도 농성장을 지키고 늦은 귀가를 하는 나에게 완전히 미쳤다고, 욕설까지 퍼부으며,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한다고, 너에게 가족은 우리가 아니고 투쟁하는 사람들이냐며 책망하며, 저를 곤란에 빠트리는 날이 빈번했습니다. 아이들도 조금씩 눈치를 보기도 하고, 활력이 넘치며 쉬는 공간이었던 집안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나의 투쟁이었지만, 모든 게 혼란스러웠고, 견딜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살아가고자 다시 힘을 내어, 천천히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고, 마음이 원하는 일,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무엇을 나에게 선물해줄까 고민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쌍둥이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하는 걸 즐거워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고, 감사하게도 조합원 동지들의 양해를 받아, 일주일에 세 번 오전반 요리수업을 받았습니다. 오후부터 밤까지 농성장을 지키고, 매주 일요일 당번을 하며, 다시 공부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고, 운이 좋게도, 한 번에 양식, 한식, 중식, 일식 조리 기능사 취득의 영광까지 느껴보기도 했지만, 이런 것들도 남편의 반대가 너무 심해 나에게 크나큰 위로는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세종호텔 해고자 철회를 외치는 투쟁 집회 현장에 노란 밥차 ‘밥통’이 출동하였고, 도와줄 수 있는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 왔고, 밥통에서는 투쟁하는 지친 노동자들을 위해 하나하나 준비한 지극 정성 사랑과 응원이 듬뿍 담긴 따뜻한 밥과, 담백한 시골된장 감자국,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들깨 죽순나물과 입맛 살리는 영양강화식 반찬들과 수제 건강차, 싱싱한 과일 등을 배식하면서 오랜만에 일해 보는 기쁨으로 완전한 평화로움을 느끼며,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맛있게 드시는 연대 동지와 학생 동지들, 그리고 함께해서 든든한 세종노조 조합원 동지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도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앞으로 나도 나를 아끼고 사랑해줘야지’ 하며 마음속으로 다짐도 했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상처받은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진심으로 아껴주며, 있는 그대로의 노동자들에게 진심으로 희망을 전도하는 ‘밥통’ 연대 활동가분들을 마주하며, 나도 그분들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연대할 수 있구나! 라는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다시한번 고백하지만 ‘밥통’에서 연대하는 즐거움은 내 심장이 콩콩콩 뛰는, 매일같이 하고 또 해도 지겹지 않은 진실한 고백입니다. 


우리가 부당하다고 외치는 정리해고 철회 투쟁이 길어지겠지만, 희망 전도사 ‘밥통’의 연대를 오래 기억하며 우리가 싸워서 승리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 할지도 고민 해봐야겠다는 설레는 고민도 하게 되었습니다. 사측이 이상한 셈법으로 나를 해고했지만, 나는 앞으로 남은 소중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스스로 선택한 나를 찾아가는 휴직 중이라고 오늘도 나 자신을 안심시키며 일상으로의 복귀가 그토록 기대되고 간절하게 기다려집니다.


많은 투쟁 현장을 찾아가 아낌없는 도움을 주며 건강한 어울림 연대와 노동자의 생명을 존중하며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정성을 다하는 고마운 ‘밥통’을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투쟁! 투쟁! 단결투쟁!!




글. 정혜진

세종호텔 경영진의 무능함으로 인한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호텔리어.
여전히 존중과 사랑을 전하는 호텔리어의 일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