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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 | 밥통 99호

2022.10 | 98호밥통 칼럼 | 노동의 밥, 그리고 노동의 노래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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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밥, 그리고 노동의 노래


이소선합창단은 2022년 9월 15일 목요일 명동의 세종호텔 앞 거리에서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투쟁 문화제에 함께했다.


이날은 노동자와 한 끼의 식사로 연대하는 밥차, 바로 밥통에서도 나왔다. 덕분에 합창단은 밥통에서 제공한 밥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냥 밥이 아니었다. 시인 백무산의 시 <노동의 밥>이 생각나게 하는 밥이었다. 시인은 시에서 “목숨보다 앞선 밥은 먹지 않”겠노라고 한다. 밥이 목숨보다 앞서면 밥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이 된다. 원래는 목숨을 위해 밥이 있어야 바람직한 세상이다. 자본가들은 돈이 곧 밥의 다른 이름이란 것을 안다. 그들은 밥으로 노동자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려 든다. 그들에겐 목숨보다 밥이 앞선 세상이 노동을 부려먹기 좋은 세상이다. 이러한 자본가의 밥에 대응하는 밥을 일러 백무산은 ‘노동의 밥’이라 이른다. “먹은 대로 깨끗이 목숨 위해 쓰이고/먹은 대로 깨끗이 힘이 되는 밥”이다. 밥통의 밥은 바로 그러한 ‘노동의 밥’이다. 바로 그 밥을 먹었다. 시위의 힘이 났다.


이소선합창단의 단원들도 일찍 나와 밥통에 연대의 손을 보탰다. 알토 박향숙 단원은 고기를 볶는 도중에 주걱을 들어보였다. 밥차의 앞에는 빨간 입간판에 “정리해고 즉각 철회 원직복직 즉각 실행”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박향숙 단원은 말이 없었지만 나는 친절하게 알려줄 때 빨리 노동자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주걱으로 한 대 맞는 수가 있다는 무언의 경고란 걸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합창단의 노래도 저녁으로 먹은 밥과 같은 밥일 수 있다. 밥차의 밥이 노동의 밥이라면 이소선합창단의 노래는 노동의 노래이다. 백무산의 시를 빌려온다면 듣고 나면 피가 돌고 사람을 펄펄 살아 튀게 하는 노래이다. 합창단은 바로 그런 노래 세 곡을 불렀다. 

첫노래는 우연찮게도 백무산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사랑노래>였다. 노래는 조용하게 흘렀다. 하지만 때로 조용한 노래가 우리의 삶을 싣고 큰 힘이 된다. 조용한 <사랑노래>가 그렇게 “심장에서 굳센 노래”로 솟았다. 두 번째 노래는 <그날이 오면>이었다. 그 사랑이 올 날이었다. 세 번째 노래는 <해방을 향한 진군>이었다. 노래는 그날을 마냥 먼 훗날에 세워두지 않고 그 날을 향해 진군했다. 진군은 파업과 노동자들이 자본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투쟁으로 그 걸음을 미래로 뗀다. 예정된 곡은 세 곡이었다. 그러나 합창단은 한 곡의 노래를 더 불렀다. 때로 사람들의 환호가 없던 노래를 불러낸다. “한 곡 더”를 외친 사람들의 환호에 합창단은 <진군의 노래>를 불러 노동해방의 참된 세상으로 진군했다. 두 번의 진군으로 그날은 훨씬 더 가까워졌다.


노동의 밥과 노동의 노래가 연대한 날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의 밥으로 힘을 얻었고 살아있는 노동의 노래가 그 힘으로 명동의 길거리를 진군하며 해방된 노동의 아름다움을 노래로 세상에 알렸다.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값진 시간이었다.



글. 김동원

문학평론가이며 주로 시에 관한 평론을 하고 있다.
노동자합창단인 이소선합창단의 활동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