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2.11 | 밥통 99호

2022.11 | 99호밥통책방 | 참혹한 역사를 온몸으로 써간 ‘육탁(肉鐸)’ 같은 시집, 《그라시재라》 /박성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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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역사를 온몸으로 써간 ‘육탁(肉鐸)’ 같은 시집, 《그라시재라》



조정 시집 <그라시재라>, 2022, 이소노미아,


 “그랑께 성님 내가 죽어도 낯 들고 그 애기를 못 만낼 거시오 엄니 총소리 탕 나먼 나 한 번만 돌아봐주소 소리가 인자는 총소리보다 더 무서와라 성님 그라고도 내가 이 목구녀게 밥 밀어 넣고 사요”(50쪽 중에서)


얼마나 처절한가.. 조정 시인의 책을 받았다. 시인 조정은 서남 해안 지역인 전남 영암이 고향이며,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분에 당선됐다. 제주 강정마을의 아픔과 생태를 아끼고, 최근엔 고양시 산황동 골프장 싸움을 이끌고 있다. 

 시집을 받아들고 무척 당황했다. <그라시재라>의 형식은 표준문법이 정한 띄어쓰기와 맞춤법 형식이 아니다. 전라도 서남 방언으로 써내려간 시집에선 시의 형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확하게는 “이불 속에 누워서 들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라고 표현한 것처럼 동란 전후를 살아온 여인들의 이야기다. 예쁜 시어, 만든 시어도 없다. 어쩌면 시집이라기엔 단편 소설처럼 보인다. 전라도 서남 사투리를 옮겼는데 이상하게 자연스럽다.  ‘느자구’, ‘당골래’, ‘더투다’, ‘보타지다’. ‘싸목싸목’, ‘지까심’, ‘항꾼에’ 이런 방언은 따로 보면 어렵지만 글 속에선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정말 모르는 말은 책 뒤에 실린 500여 단어의 서남 방언 사전을 볼 수도 있다. 사전은 그라시재라에 나온 말로 구성된 사전인데 탁월한 선택이다. 


 시를 읽으면 처음엔 육이오 당시 서남 전라도 지역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하지만 읽다 보면 잔인한 역사와 고통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을 온몸으로 견뎌낸 여성이 보인다. 이 시가 ‘서사시’인 이유는 참혹한 역사를 온몸으로 써간 ‘육탁(肉鐸)’ 같은 시이기 때문이다. 새벽 어시장 막 쏟아낸 고기들이 내는 소리, 더 이상 바닥을 칠 것이 없는 생의 바닥은 희망이 없다. 그러나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어머니들의 삶은 ‘육탁’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책이다. 이렇게 자유롭고 싱싱한 언어로 시를 읽는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는가?. <그라시재라>는 나무의 목숨이 헛되지 않는 몇 안 되는 책 중에 하나다. 조정 시인은 최근 남편을 하늘로 먼저 보내고, 스스로 ‘육탁’ 같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내일은 조정 시인을 만나 국화 향기 가득한 차 한 잔 마시고 싶다.



박성율 

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