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23.03 | 103호[밥알단 연대기]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박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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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안녕하세요. 1월4일 ‘故정우혈 열사 추모문화제’가 열린 날 처음으로 밥알단 활동을 하게 된 박소래입니다. 저는 올해 나이 38살이 되며, 학번으로는 05학번입니다.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제 또래 친구들을 사실 투쟁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는 아닙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처음으로 학교에 ‘토익’ 강좌가 개설되었고, 실질적으로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스팩쌓기’라는 말도 아마 제가 대학 다닐 때부터 일상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여대를 나왔는데요, 언니들이 학교와 사회의 부조리함들을 폭로하며 삭발투쟁을 벌여도,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것이 나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분들의 몸부림에 반응하지 않고 바삐바삐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졸업 후 12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멍든 사과가 된 것 같습니다. 한번 상처가 난 후에는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 없는 많은 아픔들. 2014년 4월 이후로 그 멍든 흔적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구나. 우리 모두의 일이구나…. 그런데 너무 막막했습니다. 투쟁의 현장에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현장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이 너무 낯설고 울분을 토해내는 피해자분들의 외침들에 그저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었습니다. 많이 무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저에게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을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밥알단 봉사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가 자격이 있을까?”였습니다. “부당한 일에 맞서서 목숨 바쳐 투쟁을 하시는 분들과 그분들의 동지와 가족분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며,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쉽게 “응! 같이 가자!”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말하길 “가서 밥만 나눠드리고 오면 돼.”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1월 4일 처음으로 밥알단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밥만 나눠드리고 왔습니다. 제가 했던 말은 “힘 내세요.”도 아니고 “맛있게 드세요.”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말이 연대의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로도 연대를 할 수 있구나.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작위적이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러웠고, 그래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닭볶음탕, 야채 베이컨볶음, 계란장조림, 미역국과 김장김치. 어느 하나 정성이 안 들어간 반찬이 없었습니다. 말이 아닌 몸으로 사랑과 지지의 편지를 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유가족분의 건강을 생각해서 따로 준비된 전복죽과 직접 오시진 못 했지만 요리 전문가께서 정성들여서 보내주신 호박죽. 춥게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채식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 젓갈이 들어가는 김치 대신 따로 준비된 무말랭이 반찬. 그 세심한 배려에서 ‘함께함’이 느껴졌습니다.


지난 10여 년 간 끊임없이 “너는 자격이 없어. 너는 할 수 있는 게 없어”라고 스스로를 자책했던 사람으로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통’ 밥알단으로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맛있게 드세요”라는 그 짧은 인사로 연대할 수 있다는 그 기쁨을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남편과 또 손 붙잡고 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소래

모두가 자기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 받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노래하는 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