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3.09 | 밥통 109호

2023.09 | 109호밥알단 연대기 | 밥은 하늘입니다. /김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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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하늘입니다.



투쟁의 현장은 언제나 치열하다. 뜨겁거나, 춥거나, 가열 차고 박터지고, 애절하고, 절박하다. 첫 사람의 발언, 그리고 마지막 행진까지 이어지고 나면 다들 목이 타고 배가 고프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우리를 맞이하는 밥통 동지들을 마주한다. 밥으로 투쟁하고 나눔으로 연대하는 밥통은 우리에게 언제나 든든한 동지들이다. 어쩌다가 나에게도 밥통의 빨간 앞치마를 두를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섬세한 배분 준비를 진두지휘하는 어떤 대장님을 따라 나도 밥주걱을 들거나 반찬을 챙겼다. 밥통 앞치마를 잠시 두르고 있다고 장애인 동료들의 고맙다는 인사까지 내가 받을 때면 이 많은 수고를 해놓고 앞에 나서지 않는 밥통 동지들은 우리에겐 베일 속 키다리아저씨다.

 


2001년 오이도역 사건을 시작으로 장애인의 이동권을 외쳤던 역사가 22년이나 지났다. 지금은 이동권뿐 아니라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의 권리까지 외치고 있다. 이동권 해결된다고 장애인이 차별없이 살아지지 않는다. 정부는 장애인의 이동권조차, 법이 정한 약속도 이행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투쟁한다. 장애와 빈곤, 질환과 고령 등 다양한 이유들로 누군가를 혐오하고 낙인찍어 분리하고 차별하는 세상에서도 밥을 나누고 연대의 자리를 채우는 베일 속 동지들이 있다. 이 덕에 투쟁이 두렵지 않다. 밥통의 밥은 하늘이고, 그 하늘은 누가 혼자 가질 수 없다.


 

 


김정하

장애인 탈시설 자립생활운동에 주력하고 있는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에서 상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은 한국사회 최초의 장애인 탈시설 운동 NGO이며, 탈시설 자립생활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발바닥행동은 장애에 대한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사람, 그 자체만으로 존엄하다는 가치를 실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