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19.03 | 56호길 위의 단상 | 칼의 세상에서 밥의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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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단상]


칼의 세상에서 밥의 세상으로                                     

시이석(평등세상을 향한 집밥 대표) 


그람시는 말한다.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지도층은 사적 욕망으로 가득차고, 

그에 순응하는 군중에 휘둘리고 있던 1986년 그해 겨울,

구로공단 공장의 백열등 밑에서 차가운 소줏잔을 기울이며 노동자 계급의 인식과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토론하던 한 사람.


그 후 30년,

여전히 페스트가 창궐하는 대한민국.


한 사람은

페스트의 한 복판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에 걸맞는 감상적 포즈를 취하며,

자신이라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집착한다.


2006년 7월, 2년 간 시간의 잔고를 털어 홀로이 인도를 휘적인다.

이제껏 한 번도 ‘가진자’로 살아본 적이 없는 한 사람에게

인도는 ‘가진자’라 한다.

황송하고도 민망하다.

가진 것이 있으면 나누어야지.


인도는 한 사람이 그토록 궁금해 하던 삶의 잔고를 살며시 보여준다.

살짝 본 삶의 잔고는 절절하게 말한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맹목적인 자기 확신을 가지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삶의 전 잔고를 털어,

삶의 전 질량을 바쳐,

그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라고.

이 한 가지를 위해 

안락한 생활 등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노숙자의 문턱에 서서 

인생의 희망을 오로지 이 한 가지만을 위해서 바쳐야 한다고.


‘그 무엇인가’를 찾다가 시간은 흐른다.


혹자는 말한다.

가치를 능욕하고 박탈했던 그 20세기는 갔다고.


2014년 4월 16일

그 21세기의 한 복판에 세월호는 침몰한다.

“가만있지 않겠다.”


2015년 10월

반올림이 강남역 8번출구 노숙농성을 한다.


‘그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하루도 견딜 수 없는 막막함.


세상의 터무니없는 부조리에 관계없이 끝내 해답이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 선택한 가치와 그에 상당하는 삶의 형태를 위해서 

일상의 안온함을 애써 외면한 채 태양열에 날개를 엮은 밀랍이 녹아 바다로 추락하는 이들의 옆에서 ‘그 무엇인가’를 본다. 


이제 4살 되는 ‘그 무엇인가’는 

오직 피로 말해야만 하는 칼의 세상에서 

‘밥’으로 어쩔 수 없는 복수를 끝내고 싶다.

2019.3.4

                                                        한 사람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