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사람이야" 공존할 권리를 빼앗긴 홈리스,
은하수(가명)님의 이야기
1. 도시가 밀어내는 사람 : 공원에서 지하도까지
도시의 밤은 더욱 밝아졌지만, 그 불빛 아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지만, 도시는 그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 ‘깨끗한 도시’, ‘안전한 거리’, ‘공공의 질서’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지우는 일.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그 익숙함에 무뎌졌다. 집이 없다는 이유로, 무료 급식소의 도시락을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는 이유로, 텐트를 쳤다는 이유로 그들은 쫓겨난다. 바로 거리홈리스들의 삶이 그러하다. 공공 공간이란 원래 함께 숨 쉬고 머무는 자리여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공공 공간은 일부 계층에게는 머무는 것조차 거부하는 곳으로 변했다. ‘관리’와 ‘정비’가 ‘공존’을 대신하고, ‘불편함’이 사람을 몰아내는 명분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공의 풍경 속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거리홈리스들이다.
이 글은 쫓겨나고 괴롭힘 속에서 읊조린 한마디, “나도 사람이야”라는 절규를 따라가려 한다. 이 절규는 홈리스행동이 빈곤 철폐의 날을 맞아 무대에 올렸던 연극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며, 도시가 어떻게 거리홈리스를 밀어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사람, 은하수(이하 가명)님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지난 10월 18일, '1017빈곤철폐의날'을 맞아 홈리스행동에서 준비한 연극 공연 모습. 무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주인공 ‘은하수’님이다.
은하수님이 노숙을 시작한 곳은 서울의 한 공원이었다. 그곳에는 그를 포함해 몇 명의 거리홈리스가 몇 달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텐트를 치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공원은 ‘리모델링 공사 안내문’이 붙었다. 며칠 뒤, 그들의 텐트마다 계고장이 부착되었다. “일주일 내에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합니다.”라는 계고장이 부착되었다. 마치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곳의 쓰레기를 치우듯이 기약 없이 계고장은 붙었다.

2023년 7월, 서울 중구 순화공원 홈리스 텐트에 실제로 부착되었던 계고장.
갈 곳이 없었던 은하수님은 계고장을 붙이러 온 공무원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공무원은 짧게 답했다.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알아서 하라는 공무원의 태도는 은 씨를 그의 삶의 터전이었던 공원 밖으로 떠밀었다. 공원은 모두의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선택적 공공 공간’이 되어 있었다.
결국 은하수님은 짐을 싸서 지하도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잠자리를 까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자리를 까는 은하수님을 본 민간 상업시설의 관리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이곳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방해되니 나가라고 한다. 그 말은 은하수님에게 협박이었고, 공포였다. 지하도는 분명 공공 공간이었지만, 그 실질적인 주인은 ‘손님’이라 불리는 소비자였다. 공공의 이름 아래 자본의 논리가 지배했고, 은하수님은 장사를 방해하는 ‘방해물’로 취급되었다.

2023년 6월, 서울스퀘어 보안 직원이 서울역 앞 지하보도의 거리홈리스를 강제 퇴거한 사건에 대응하는 기자회견 사진.
2. 차가운 지원 시스템과 혐오의 시선
은하수님은 공공 공간에서 쫓겨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노숙인 지원 거리상담반은 은하수님의 절박한 질문을 듣는다. “방도 구할 수 있나요?” 직원은 대답한다. “월세도 몇 달 도와드리는데요, 지금은 예산이 다 떨어졌어요. 주변에 빈방도 없어서 당분간은 어렵습니다.” 직원은 무심히 답한다. 그의 말은 겨울 공기처럼 차가웠다. 선택지는 시설 입소 아니면 차가운 겨울 거리뿐이었다. 단체 생활은 죽어도 싫은 은하수님은 다시 서울역 광장의 한쪽으로 밀려났다.
이제 잠을 자려던 은하수님의 텐트 앞을 지나던 유튜버들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광장을 점거했다느니, 여기서 자도 되냐는 그들의 말은 놀림이었고, 장난이었고, 콘텐츠였다. 은하수님의 놀란 얼굴도, 분노한 외침도 조롱으로 덮였다. 경찰에 신고한다는 은하수님의 외침은 클릭 수를 높이는 영상의 일부가 되었다.

2024년 12월, SBS뉴스에서 방영된 서울역 광장에서 스트리머들이 홈리스의 텐트를 깔아뭉개고 조롱하는 뉴스 영상 갈무리.
3. 공존을 위한 외침: “나도 사람이야”
이 도시에서 홈리스는 종종 게으른 자, 비협조적인 자, 심지어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그들을 쫓아내는 공무원, 영업 시설의 직원, 유튜버의 행동은 사회적 혐오를 더욱 부추길 뿐이다. 이 모든 배제와 혐오의 시선 앞에서, 은하수님은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나도 사람이야.”
은하수님의 이 한마디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이는 도시의 배제 시스템에 맞서는 저항이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외침이다. "돈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은 이제 싫다! 모두를 위한 집, 모두를 위한 도시를 만들자! 홈리스의 공존할 권리를 보장하라!“

연극의 마지막 장면. 은하수님과 출연자들이 구호를 외친 후 인사하는 모습.
진정한 도시의 공존은 모든 시민의 기본적 권리다. 홈리스가 공공 공간에서 밀려나는 현실은, 은하수님의 이야기 속에만 있지 않다. 이 도시가 진정으로 ‘공존’을 말하려면, 누구도 쫓겨나지 않을 권리, 즉 공존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주거권을 보장하고, 공공 공간을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나도 사람이다.”라는 선언에 걸맞은 도시의 모습이다. 이제 도시가 은하수님의 외침에 응답할 차례다.
글. 황성철
홈리스 당사자 조직화와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로 있으면서 주로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을 맡고 있다.
"나도 사람이야" 공존할 권리를 빼앗긴 홈리스,
은하수(가명)님의 이야기
1. 도시가 밀어내는 사람 : 공원에서 지하도까지
도시의 밤은 더욱 밝아졌지만, 그 불빛 아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지만, 도시는 그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 ‘깨끗한 도시’, ‘안전한 거리’, ‘공공의 질서’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지우는 일.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그 익숙함에 무뎌졌다. 집이 없다는 이유로, 무료 급식소의 도시락을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는 이유로, 텐트를 쳤다는 이유로 그들은 쫓겨난다. 바로 거리홈리스들의 삶이 그러하다. 공공 공간이란 원래 함께 숨 쉬고 머무는 자리여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공공 공간은 일부 계층에게는 머무는 것조차 거부하는 곳으로 변했다. ‘관리’와 ‘정비’가 ‘공존’을 대신하고, ‘불편함’이 사람을 몰아내는 명분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공의 풍경 속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거리홈리스들이다.
이 글은 쫓겨나고 괴롭힘 속에서 읊조린 한마디, “나도 사람이야”라는 절규를 따라가려 한다. 이 절규는 홈리스행동이 빈곤 철폐의 날을 맞아 무대에 올렸던 연극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며, 도시가 어떻게 거리홈리스를 밀어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사람, 은하수(이하 가명)님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지난 10월 18일, '1017빈곤철폐의날'을 맞아 홈리스행동에서 준비한 연극 공연 모습. 무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주인공 ‘은하수’님이다.
은하수님이 노숙을 시작한 곳은 서울의 한 공원이었다. 그곳에는 그를 포함해 몇 명의 거리홈리스가 몇 달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텐트를 치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공원은 ‘리모델링 공사 안내문’이 붙었다. 며칠 뒤, 그들의 텐트마다 계고장이 부착되었다. “일주일 내에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합니다.”라는 계고장이 부착되었다. 마치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곳의 쓰레기를 치우듯이 기약 없이 계고장은 붙었다.
2023년 7월, 서울 중구 순화공원 홈리스 텐트에 실제로 부착되었던 계고장.
갈 곳이 없었던 은하수님은 계고장을 붙이러 온 공무원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공무원은 짧게 답했다.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알아서 하라는 공무원의 태도는 은 씨를 그의 삶의 터전이었던 공원 밖으로 떠밀었다. 공원은 모두의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선택적 공공 공간’이 되어 있었다.
결국 은하수님은 짐을 싸서 지하도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잠자리를 까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자리를 까는 은하수님을 본 민간 상업시설의 관리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이곳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방해되니 나가라고 한다. 그 말은 은하수님에게 협박이었고, 공포였다. 지하도는 분명 공공 공간이었지만, 그 실질적인 주인은 ‘손님’이라 불리는 소비자였다. 공공의 이름 아래 자본의 논리가 지배했고, 은하수님은 장사를 방해하는 ‘방해물’로 취급되었다.
2023년 6월, 서울스퀘어 보안 직원이 서울역 앞 지하보도의 거리홈리스를 강제 퇴거한 사건에 대응하는 기자회견 사진.
2. 차가운 지원 시스템과 혐오의 시선
은하수님은 공공 공간에서 쫓겨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노숙인 지원 거리상담반은 은하수님의 절박한 질문을 듣는다. “방도 구할 수 있나요?” 직원은 대답한다. “월세도 몇 달 도와드리는데요, 지금은 예산이 다 떨어졌어요. 주변에 빈방도 없어서 당분간은 어렵습니다.” 직원은 무심히 답한다. 그의 말은 겨울 공기처럼 차가웠다. 선택지는 시설 입소 아니면 차가운 겨울 거리뿐이었다. 단체 생활은 죽어도 싫은 은하수님은 다시 서울역 광장의 한쪽으로 밀려났다.
이제 잠을 자려던 은하수님의 텐트 앞을 지나던 유튜버들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광장을 점거했다느니, 여기서 자도 되냐는 그들의 말은 놀림이었고, 장난이었고, 콘텐츠였다. 은하수님의 놀란 얼굴도, 분노한 외침도 조롱으로 덮였다. 경찰에 신고한다는 은하수님의 외침은 클릭 수를 높이는 영상의 일부가 되었다.
2024년 12월, SBS뉴스에서 방영된 서울역 광장에서 스트리머들이 홈리스의 텐트를 깔아뭉개고 조롱하는 뉴스 영상 갈무리.
3. 공존을 위한 외침: “나도 사람이야”
이 도시에서 홈리스는 종종 게으른 자, 비협조적인 자, 심지어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그들을 쫓아내는 공무원, 영업 시설의 직원, 유튜버의 행동은 사회적 혐오를 더욱 부추길 뿐이다. 이 모든 배제와 혐오의 시선 앞에서, 은하수님은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나도 사람이야.”
은하수님의 이 한마디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이는 도시의 배제 시스템에 맞서는 저항이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외침이다. "돈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은 이제 싫다! 모두를 위한 집, 모두를 위한 도시를 만들자! 홈리스의 공존할 권리를 보장하라!“
연극의 마지막 장면. 은하수님과 출연자들이 구호를 외친 후 인사하는 모습.
진정한 도시의 공존은 모든 시민의 기본적 권리다. 홈리스가 공공 공간에서 밀려나는 현실은, 은하수님의 이야기 속에만 있지 않다. 이 도시가 진정으로 ‘공존’을 말하려면, 누구도 쫓겨나지 않을 권리, 즉 공존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주거권을 보장하고, 공공 공간을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나도 사람이다.”라는 선언에 걸맞은 도시의 모습이다. 이제 도시가 은하수님의 외침에 응답할 차례다.
글. 황성철
홈리스 당사자 조직화와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로 있으면서 주로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