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19.04 | 57호여기 사람이 있다 | 그래서 오늘도 밥을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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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밥을 나른다

김주휘(역사수업하는 공부노동자)


  

집회나 길위의 미사가 있을 때면 머리하나 보태는 마음으로 함께 해왔다. 그러며 알게된 어르신들께서 애들 밥은 주고 나오는지, 신랑 밥은 챙기고 다니는지 종종 걱정스레 물으셨다. 


그래서 그때부터 한동안 <저 밥해놓고 나가요>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페북에다 했더니 ‘배고프다.’ ‘나도 먹고싶다’ 등의 댓글들이 달렸다. 대부분 집밥이 그리운 거리의 농성자들이었다. 마음 한 켠이 싸~해지며 미안하고 아팠다. 억울하게 해고당하고 가족을 잃고 삶을 파괴당한 그들에게 일상과 따뜻한 집밥은 그들의 것이 아닌 지 오래였다. 


그러던 2015년 어느 추운 날,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이 머물던 팽목항에 들렀을 때였다. 부모님들은 종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계셨다. 한 분 나와서 물 부어 들어가시고 잠시 후 또 한 분 나와서 물 부어 들어가시고…. 그때서야 알았다. 먹는 게 힘드시다는 것을. 쌀과 라면 김치 즉석밥 등의 물품이 들어와도 오로지 반찬도 없이 컵라면 하나 후룩 넘기고 소화제는 한주먹씩 드셨다. 

거죽만 남은 분들을 보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바로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었다. 그곳엔 썩어가는 김치와 장아찌류가 가득했다. 먹기 위해 장을 보고, 먹기 위해 음식을 차리는 일들이 그분들께는 이미 사치였던 것이다. 그나마 누가 와서 끌고 나가 외식을 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일은 없어 보였다. 냉장고를 모두 치우고 밥을 했다. 처음엔 딸과 함께 컨테이너마다 들어가 억지로 모시고 나와야 했으나 막상 드시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미수습자 가족들 말고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들은게 얼마만인지, 이렇게 모여 앉아 밥 먹은 게  얼마만인 거냐며 연신 딸아이를 쓰다듬으셨다. 

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하면 목이 멘다. 박근혜를 탄핵하고 세월호가 올라오기까지 그분들은 그렇게 팽목항에 버려져있다시피 계셨다. 그 후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서 밥을 하고 청소를 했다. 며칠씩 머물러도 떠나올 때마다 아쉽고 아팠다. 배가 올라오고 결국 실종자 모두 수습되지는 못했으나 부모님들이 집으로 돌아가시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밥을 연대하는 대상이 바뀌었다. 


처음엔 주로 이곳저곳 반찬을 해서 날랐다. 그러다 서울 에너지 공사 굴뚝 75m 상공에 두 노동자가 스스로를 가두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추워지기 시작한 11월. 갑자기 2015년 그날 팽목의 찬바람이 느껴졌다. 머릿속엔 오로지 따뜻한 무언가를 먹여야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만만한 오뎅탕을 들통 한가득 끓여 집회에 나갔더니, 하루 두 번 아침 10시 오후 다섯 시에만 밥을 올린다고 했다. 필요한 게 무언지 집요하게 물어보니 한참만에야 두고 먹을 마른반찬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갈비찜과 마른반찬 등을 준비했다. 왠지 고기라도 든든하게 배를 채우면 추위를 버틸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주로 식사는 어찌하시냐고 여쭈니 식당밥을 포장해서 올리거나 꿀잠(비정규직노동자쉼터)에서 가끔 연대해 주신다고 했다. 마른반찬이 필요한 이유였다. 누군가 연대하지 않으면 기껏 김치 깍두기든 포장음식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 엄청난 추위에 이렇게 달랑 두 끼로 저 높은 고공맨땅에서 깡 하나로 버틴다 생각하니 내가 다 서러웠다. 


밥을 나르는 이유다. 내가 이리 서러운 데 당하고 겪는 이들은 얼마나 서러울까. 우선 잠시라도 설움을 떨치고 싶었다. 보온병을 고르고 반찬통을 고르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뜨고 신났었다. 그게 전부다. 아주 잠깐이지만 입에 밥 넣는 순간만큼이라도 보온병을 고르고 반찬통을 고르던 나처럼 그들도 신나고 들뜨길 바랐다. 

숨 쉬어야 하니까,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밀어넣는 음식물이 아니라 나를 걱정하고 아끼는 누군가가 그 밥을 먹는 순간만이라도 행복하길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밥을 통해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들의 투쟁에 힘 보태고 싶었다. 


젊음을 투자한 공장에서 버려지고, 삶을 맡겼던 세상에서 유린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를 불의라 당당히 외치며 살만한 세상으로 바꿔보겠다는 그들이 있기에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희망을 읽는다. 그러니 굴함없이 싸워주는 그들이 얼마나 감사한가. 

거대하고 악독한 자본과 타협하지 않고 비켜감 없이 당당히 싸우는 거리의 노동자들이 있기에 사람과 생명보다 그저 돈이 우선시 되어버린 이 나라에서 희망을 본다.


그래서 오늘도 밥을 나른다. 

더는 일상을 빼앗기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삶이 해체당해서 하늘 위로 거리로 내몰려지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