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6.04 | 밥통 140호

19.05 | 58호밥차 이야기 | 밥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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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차 이야기 ]


밥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들

성미선(십시일반 밥묵차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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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달려라 밥묵차’

현실의 불합리를 온 몸으로 막으며 저항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곳, 아픔을 치유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세상에서 소외된 약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유희, 김기수. 밥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들


나는 평소 주변의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관계를 맺는다. 주로 집에서 밥을 지어 나눠 먹으며 사이를 돈독하게 만든다.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다. 이 일은 내가 하고 싶을 때, 시간이 날 때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인 일이다. 그런 내가 생판 남이고 밥 한번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과 밥으로 인연을 맺었다.


‘유희’라는 사람이 12월 마지막 날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어묵 나눔하러 간다며 함께 하실 분이 있다면 광화문 광장으로 와 달라고 글을 올렸다. 나는 선뜻 메신저로 ‘제가 갈게요’라고 연락하면서 유희 언니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저 고마웠고 내 힘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준비한 어묵탕은 광화문 광장에서 쉽게 동이 났다. 마지막 국물을 따뜻하게 나눌 때까지 유희씨는 당신이 누구라는 말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했다. 


“막차 놓치면 어떻게 해요. 어서 가세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나의 귀가를 챙기고는 당신도 총총걸음으로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와 유희 언니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외롭고 힘들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음식 나누는 일을 30년간 해온 흔적이 거기 있었다. 


그 후 시간이 나면 밥나눔 하는 곳에 따라가서 배식을 돕고 헤어지기를 수차례 하던 중 유희언니를 응원하고 지지하던 여섯 명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유희 언니가 밥 나눔을 할 방법을 고민하다 밥차가 있으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언니는 절대 싫단다. 밥차를 장만하려면 큰 몫돈이 드는데 힘들게 현장을 지키는 분들에게 모금을 해달라고 하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모금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 일을 벌였지만 모금은 목표액에 턱없이 모자라고 결국은 유희 언니가 나서는 상황이 되었다.


모두의 소망이 모여 일을 벌였지만 그 꿈을 이뤄낸 사람도 결국은 유희 언니 자신이었다. 그렇게 ‘달려라 밥묵차’가 태어났다. 밥차가 있으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불편하지 않게 일을 할거라는 것은 그냥 우리의 바람이었다. 밥차가 움직이자 밥을 준비하는 규모는 점점 커져갔고, 연대 요청하는 현장은 더 많아지고 쉴 새 없이 현장으로 그야말로 달려야했다. 이름을 잘 지은 건지 밥차는 늘 ‘달려라 밥묵차’ 였다.^^


밥묵차와 함께 한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

18년 11월 4박5일간의 비정규직 서울 상경 투쟁. 말 그대로 4박 5일간의 삼시세끼를 준비해서 투쟁의 길에 나선 동지들의 밥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집에서도 삼시세끼를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거리에서 그것도 매번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장소마저 달랐다. 아침 먹고 나면 바로 점심 준비를 해서 점심 먹을 장소로 이동하고 점심식사가 끝나면 또 저녁 먹을 장소로 이동해서 저녁 준비하고 참 지금 생각해도 어찌 그 일을 해냈을까 싶다. 

저녁 배식을 마치면 주변 배식 현장을 정리하고, 쓰레기 정리하고 식자재마트가 문을 닫기 전에 부랴부랴 차로 달리고 차를 주차하면 이번엔 카트를 밀고 달려야했다. 달리는 동안 언니는 내일 찬거리를 정리해서 말하면 기수 씨는 카트를 밀고 쏜살같이 달려 어느새 카트에 필요한 물품들을 차곡차곡 담고 있다.

그렇게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오면 11시를 훌쩍 넘긴다. 첫날 언니네 집으로 들어선 난 깜짝 놀랐다. 식재료가 부족해서 마트에 가서 장을 한 짐이나 보고 왔는데 현관부터 시작해서 마루는 온통 찬거리와 당면, 밀가루 등을 비롯한 식재료들로 식재료 상을 방불케하는 현장이었다.

‘아니 이렇게 많은데 뭘 또 그렇게 사셨어요?’ 하면 아니 이건 여기에 써야 하고 이건 또 뭐고 이러시면서 괜히 내 앞에서 주눅든 아이마냥 변명을 늘어놓으신다. 그 모습이 귀엽다.



휴가 나온 아들 찬하나라도 더 해 먹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엄마처럼 언니는 매일 다른 반찬에 다른 국에 심지어 김치까지 고루 돌아가며 준비를 하셨다. ‘나는 밤에라도 집에 오지 이 추운 날 거리에서 한뎃잠을 자면서 있는 동지들을 생각하면 잠이 안와’ 라는 말을 시작으로 설거지를 마치면 다음날 아침준비가 끝나야 잠자리에 드신다. 

4박5일 간 매일 새벽 1시에 잠이 들어 새벽 5시면 기상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나는 그랬다. 그 사이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아들이 귀가하면 늦게 저녁을 챙겨 먹이는 언니는 아마도 나보다 수면시간이 최소 한 시간은 부족했을 거다. 강철체력이다. 체력하면 나도 어디가서 뒤지지 않았는데 나도 졌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아이가 매일 이런 노래를 부르며 밥을 먹었던 시절을 보낸 나는 밥으로 맺은 인연이 귀한 사람이다.

밥을 정성으로 지어, 먹는 사람을 지성으로 모시는 사람들

아무도 하지 못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사람들

그렇게 십시일반 ‘달려라 밥묵차’의 유희, 김기수님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되어 고맙고 행복하다. 


십시일반 ‘달려라 밥묵차’의 모든 인연들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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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 | 밥통 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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