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19.09 | 62호밥통 연대기1 | 연대의 자리에서 발언하다/최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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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통 연대기 ]


연대의 자리에서 발언하다

최애란(우동꽃 동네부엌 대표)



안녕하세요. 밥통에 밥알단으로 활동하는 최애란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세종호텔 노동조합 거리집회에 음식을 정하고 반찬 몇 가지 준비하는 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그리고 삼성본관 앞에서 그리고 서울역에서 노동자들의 거리집회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하고 있는 일이 식생활강사이다 보니 밥으로 연대하는 일은 힘들기보다는 항상 즐거운 일입니다. 


집회를 지켜보며 가끔 발언의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연대하러 온 사람들이 발언대에 서는 걸 지켜보다 보니 어느 순간 연대자의 발언이 이 집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기억은 연대자가 자기의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겁니다. 길어지면 지루해지기도 하지만 주관단체인 해당 노동조합에 훈계하는 연대자보다는 좋아 보이더군요. 그래서 제가 연대자로 발언을 할 기회가 갑자기 생길 때마다 굉장히 부담이었습니다. 그래도 시키면 워낙 다 하긴 합니다. 점심 한 끼 혹은 저녁 한 끼 차려드리러 왔을 뿐이고 기껏해야 한 달에 한번 왔을 뿐 노동자들의 사정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니까 발언대에 섰을 때마다 정신없이 횡설수설 아침마당처럼 남편과 아이들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뭘 이야기해야하지? 그냥 왜 왔는지 내 이야기 하다가 응원합니다. 지지합니다. 하고 내려오다가 다른 연대자들의 발언을 듣게 되더라구요. 


연대단위의 투쟁이 지금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있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연대 테이블이 공식적으로 있었고 같이 앉아서 회의를 하던 1990년대 마지막과 2000년대 초반 저도 노동조합 지원 단체에서 활동했었거든요. 연대테이블에 앉아서 회의하는 게 당연하던 때에 활동을 했었다보니 꼭 그 사업장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 사실 잘 모르잖아요. 그러다 문득 생각났어요. 광우병으로 시작 되었던 촛불광장에서 축제처럼 만들어졌던 시민들의 자유발언대 말이예요. 굉장했거든요.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그런 발언대였을 겁니다. 그러니 노동자들의 거리집회가 우리사회 곳곳에 그런 자유발언대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많은 분들이 발언대에 서면 꼭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잘 모르면서도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 같은데, 그것보다는 각자 개인의 정치적 자유발언대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어느 날 또 갑자기 발언대에 서게 된 저는 이런 이야기를 했지요.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시대는 없었을지 모르나 모든 인류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노동자와 농민이 차리는 밥상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인류가 가장 마지막까지 타인의 손을 빌려 서로 협력해야 하는 일은 밥상을 차리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길렀을 채소가 올라와야 하고 누군가 잡았을 생선이 올라오니까요. 모든 인간이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노동자와 농민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일상을 버티고 지켜왔습니다. 그러니 꼭꼭 씹어 먹으며 그 일상의 평화로움을 잊지 않고 지켜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밥통과 함께하는 연대가 저는 너무 좋습니다. 오늘 차린 음식은 더운 여름에 기력을 챙겨주는 음식들입니다. 그리고 준비한 음료는 죽은 맥도 살려준다는 이름의 ‘생맥음’이거든요. 사회적인 관심이 사라지다보면 외로운 노동자들이 자꾸 높은 곳에 올라가고 거기에서 또 음식을 거부하는 단식도 하시는 거 같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도 잊지 않도록 애쓰겠습니다.” 


그렇게 발언을 하고 나니 제가 왜 밥통과 연대하는지 더 분명해지더군요. 세종노조의 거리집회가 연대자들의 자유발언대로 수년이 되어왔구나 그것만으로 정말 의미있는 투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감사한 일이지요. 노동조합이 회사와 싸우는 동안 함께 버텨주는 연대자들의 지지는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공간이었고 노동조합이 이 ‘열린광장’을 마련해 주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매월 마지막 주 세종호텔 앞에서 만나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