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19.11 | 64호밥통 연대기 | 서로와 서로의 힘으로 이렇게/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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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통 연대기 ]


서로와 서로의 힘으로 이렇게

-강남역 삼성해고자 고공농성장 출동 후기

류승아(농부, 밥알단)





“엄마, 오늘은 알이 세 개야!” 

우리집 달걀 당번은 여덟 살 찬얼이에요. 학교 갔다 돌아오면 가방을 맨 채로 닭장부터 찾지요.


요상스럽게도 이 녀석은 어려서부터 고기반찬을 본둥만둥 했는데 달걀은 곧잘 먹어요. 모자란 어미지만 그나마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한 음식’이라는 생각에 닭을 직접 길러 보기로 마음을 먹었죠. 유정란을 얻고 부화기를 빌려 병아리를 얻었어요.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셋째 아이를 낳은 것만큼 기뻤어요. 밭에서 일할 때 데리고 나가 호미로 흙을 긁어주면 숨어있다 놀라 도망가는 벌레를 잡아먹으며 건강하게 자랐어요.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 어느덧 알을 낳기 시작할 무렵, 저는 강남역네거리 철탑에 마음이 사로잡히고 말았어요. 삼성에서 해고되어 25년여를 복직투쟁해 온 노동자. 김용희님이 55일 단식 끝에 보식도 제대로 못한 채 삼성과 싸우며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그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옛날부터 오골계는 왕이 먹었던 보양식이라죠? 아무리 가족같이 키운 닭이라지만 필요한 곳에 잘 쓰이면 그보다 값진 일이 없죠. 유난히 시끄럽게 울어대던 수탉 한 마리를 골랐어요. 가장 먼저 태어나 일구라 이름 지어 준. 이제 막 성계가 되어 짝짓기를 시작한 일구에게 많이 미안했지만 우리가 마트에서 사거나 치킨집에서 시켜 먹는 육계는 28일의 짧은 생을 살다가니까. 다섯 달을 산 일구의 생은 그나마 길었다고 위안 삼아요. 사는 동안에도 풀밭 헤치며 자유롭게 살았으니 계계(鷄界)의 금수저라고 봐야죠. 철탑으로 오골계 백숙을 올리면서 이 처참한 농성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그리고 다시 연대 오리라 다짐했어요.


다짐은 했으나 농사일과 사는 일에 쫓기던 중 밥통 이사장 한광주님이 ‘삼성을 다 싸먹을 월남쌈’으로 삼성고공 농성장을 응원하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요! 밥통의 웹진 편집자로 시작해 밥알단으로 열심히 굴러다니다 밥통과 멀어진지 4년 만에 밥통 출동에 함께 하게 되어 적잖이 흥분되었어요. 그래서 시키지 않은 출동 포스터도 만들었어요. 여기저기 소문내어 와주시길 청했어요. 잘 차려진 밥상이라도 밥만 먹기에는 아쉬워 공연해주실 분을 수소문 해보았는데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비겁하게 페이스북에다 슬쩍 올렸죠. “누가 노래 좀 불러주세요~~!!” 믿는 신도 없으면서 “신이시어 굽어 살피소서~” 농도 달고요.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어요. 일정이 빠듯해 오실 수 없다던 민중가수 유희님과  박준님이 기타를 메고 강남역에 나타나셨어요! 유희님은 총각김치와 깻잎장아찌까지 챙겨 오시고요. “신은 있다!” 하며 좋아했더니 누가 그래요. “신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거죠.” 맞아요.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죠. 서로와 서로의 힘으로 이렇게 살아가나 봅니다.


정말 신이 났어요. 싱싱한 야채를 썰면서도 콧노래가 나왔고 닭가슴살을 찢으며, 새우꼬리를 벗기면서도 흥에 겨웠어요. 용인 김춘식, 송인숙님이 만들어오신 팔뚝두부는 홍성의 어느 마을이 담아서 보낸 김치와 잘 어울렸고 정홍준님의 카레는 오묘한 맛의 매력이 있었어요. 대구에서 오신 홍정미님의 수제쿠키는 순식간에 동이 났고 월남쌈은 주요리로 화려하게 시작해서 술안주 샐러드로 변신해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었어요.


아니, 누가 시작한거죠? 강남역네거리, 그 번화한 거리를 노래방인지 나이트클럽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 사람 누구에요? 신나는 노래에는 흥에 겨워 들썩이고! 잔잔한 노래에는 손에 손을 맞잡고 얼싸 안고. 재미난 노래에는 서로의 어깨를 이어 기차놀이를 하며 투쟁을 놀이로 승화시킨 사람들! 바로 우리죠. 그 시간만큼은 25미터 철탑 위 외롭고 고독한 해고노동자 김용희님의 어깨도 들썩이게 만들었어요!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해고되어 수십 년을 부당함에 맞서 싸우시는 김용희, 이재용님이 삼성으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배상받으셔야 합니다.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리고 노조를 파괴하는 삼성은 이제 무노조 정책을 버려야 합니다. 범죄자 이재용은 감옥으로 가야하고 해고노동자 김용희는 땅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삼성의 악행을 고발합니다. 김용희님이 삼성으로부터 당한 부당한 일들이 이 영상에 담겨 있습니다. 고통스런 시간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봐주시길 부탁드려요.

https://youtu.be/kqtYkvK4uUM


이날 밥알단으로, 연대가수로, 백댄서로, 만찬의 주인공으로 함께 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홍정미  한광주  정순교  정상천  이종란  유희  신정현  송인숙  박호준  박준 박미희  맹달  류승아  김희명  

김춘식  김진우  김종민  김정은  김용희 김수영 김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