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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70호밥통칼럼 | 너희 나라는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니?/장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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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통칼럼]


너희 나라는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니?

장예정 |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노동건강연대라는 사회운동 단체가 있다.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다. 이 단체 활동가가 스웨덴 사람을 만나서 물었다고 한다.

 “스웨덴에서는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자 그 스웨덴 사람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고 한다.

“사람이 일하다 왜 죽나요?”

질문한 활동가는 이런 반응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노동자가 죽는 것을 별로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사회에서, 심지어 판사가 “일하다 보면 죽을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옹호하라」 215쪽, 류은숙, 코난북스-

지난 해 11월 21일 경향신문에서 신문 1면을 2019년 1월 1일부터 9월까지 5재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이름으로 채웠다. 그 큰 신문에 깨알 같은 글씨로 한 면을 가득 채운 그 이름들 앞에 숨이 턱 막힌 사람이 나 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9달 만에 일하다 죽은 사람이 자그마치 1,200명이었다. 올해도 뉴스에는 일하다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뒤덮였다. 코로나19로 몇 달은 세상이 멈춘듯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사람들이 일하다 죽는 것일까? 노동현장에서 어떤 이가 목숨을 잃더라도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그 생명의 무게만큼 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는 너무나 많은 사례가 있으나 가장 최근에 있었던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를 예로 들 수 있다. 무려 38명의 노동자가 이천에 소재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다 낮 1시에 목숨을 잃었다. 이 죽음에 대하여 누가 어떤 책임을 지고 있을까. 놀랍게도, 아니 이제 이 나라에서는 놀랍지도 않게 ‘아무도’ 책임지고 있지 않다. 또다시 영정을 든 유가족들이 ‘잔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라는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라는 피켓을 들고 매일 일인 시위를 하는 그 자리에서 말이다. 우리는 흔히 ‘이천 화재 참사’라 부르지만 유가족들이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라 불러주길 바라는 이유도 원청인 한익스프레스사에서 자신들은 이 물류창고 공사에 관여한 바 없고 그러니 책임이 없다며 발을 빼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들이 이 공사에 관여한 정황들이 속속 밝혀지는 중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친 경우 사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 혹은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되어 있다. 현실은 2013년부터 5년간 사업주 10명 가운데 9명이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에 처해진 꼴이었다. 벌금은 보통 5백만 원 이하였다. 

다시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 이야기로 돌아가면, 공사현장의 설비를 화재에 강한 자재로 지었다면 그렇게 단시간에 큰불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죽을 위험이 있는 현장의 책임자로 있다가 구속되거나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면 사업주는 어떻게 해서든 그 현장을 안전하게 만들고자 살필 것이다. 실제 영국에서는 노동현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했을 경우 거액의 벌금, 심지어는 그 회사가 파산을 하더라도 반드시 내야만 하는,을 규정한 법안이 시행된 후 10년이 지나자 사망노동자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노동현장의 모든 죽음이 법 제정으로 막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근본적인 제도의 정비 없이 현장이 저절로 안전해질 리는 없다. 죽음의 위협 앞에 그런 낭만은 접어두자. 21대 국회가 막을 올렸다. 정권 3년 차에도 지지율 60%를 넘기는 인기 많은 대통령, 그리고 개헌을 제외한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도 능히 해낼 거대한 권력을 획득한 집권여당의 시대가 왔다. 적어도 이들이 ‘노동하다 죽지 않을 세상’ 정도는 일구어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