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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 | 73호현장돋보기 | 평등의 약속을 이은 버스 / 장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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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돋보기 ]


평등의 약속을 이은 버스

장예정(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



기록적인 폭우 직후에,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를 타던 8월 17일. 무거운 마음으로 평등버스가 출발했습니다. 많은 지지와 응원, 그리고 걱정 속에 출발했기에 우리는 안전을 가장 최우선으로 두고 이 길을 떠났습니다. ‘이런 시기에 꼭..?’하는 우려는 인권활동가 사이에서도 있었지만 우리는 당초 계획한 성대한 문화제와 5천장의 리플렛을 모두 배포하는 일 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버스를 출발시켜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정기국회는 얼마 남지 않았고 내년이면 국회는 대선을 준비할 것이기에 올해를 넘기면 또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 버스를 출발하기 주저하게 만든 것도 코로나19였지만 출발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도 코로나19였습니다. 전국민 아니 전세계를 ‘코로나블루’에 빠트리고 있는 이 고약한 감염병은 우리 사회의 낙인, 배제, 혐오와 차별을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12박 13일, 26개 도시, 2000km의 여정을 그렇게 다녀왔습니다.



평등버스가 남긴 것들

차별금지법을 들고 비서울지역의 시민들을 만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간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광화문 일대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거나 국회 앞 1인시위를 진행하고, 지역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의 간담회를 하러 한적은 있었지만 말입니다. 아직 차별금지법이 낯선 시민들에게 차별금지법을 알리고,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시민들에게는 ‘우리동네’에서 신나게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캠페인을 진행할 공간을 열었다는 것이 우리가 남긴 가장 큰 성과일 것입니다. 

8월 24일,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소규모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는데 멀찍이 떨어진 곳에 어느 중년 여성분께서 계속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어떤 일로 오셨는지 여쭈었더니 ‘그냥...그냥 평등버스가 여기까지 내려온 것에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어요’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마스크로 가려져 표정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우리가 찰나의 순간 나눈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존재로 위안을 받았음을 느꼈습니다. 이런 순간순간들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가 이 먼 길을 다녀간 것이겠죠. 버스가 떠나고 며칠 후, 코로나19 확산세는 더욱 심각해졌기에 평등버스는 리플렛을 나누어드리는 것은 중단하였습니다. 문화제도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진행하거나 선전전으로 전환하여 대면을 최소화하였습니다. 일정을 줄이고 줄이며 만나는 시민들이었기에 시민들을 만나는 모든 순간이 귀중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몇몇 장면이 있습니다. 목포 일정 중 짬을 내어 누워있는 세월호를 만나고 왔습니다. 살이 타는 듯한 더위가 내리쬐었지만 그것을 압도하는 슬픔이 가득하였습니다. 세월호와 차별금지법. 언뜻 연결되지 않는 둘이지만 우리는 ‘국가가 한 사람도 두고 가지 않겠다’는 선언으로서의 차별금지법과 ‘국가란 한 사람의 생명도 경시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준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는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목포항에 들렀습니다. 또, 많은 노동자들도 만났습니다. 이 법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법이기에(틀린 말이 아니기는 합니다. 차별금지법은 모두를 위한 법이니까요) 반대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은 차별금지법이 활약할 주된 무대는 노동현장입니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의 내용을 보면 절반 가까운 분량이 고용노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만나 설득하고 우리와 함께 이 길을 걸어달라고 노동자들을 설득할 시간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포항에서 맞이한 아침, 선전전을 하러 간 자리에서 만난 한동대 청소노동자분들, 울산을 지나는 평등버스를 먼저 알아보고 연락주신 울산 장애인콜택시 부르미지회, 아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 부산에서 만난 김진숙 지도위원, 평택을 비롯하여 수많은 지역에서 우리를 열렬히 맞이해준 모든 민주노총 동지들까지.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 활약할 세상을 그려보는 기분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연대로 시작하여 연대로 끝난 평등버스

평등버스 전국순회는 연대로 시작하여 연대로 마친 여정이었습니다. 평등버스 기획을 듣고 종이모형 도안을 무료로 만들어주신 분, 저렴하게 너무 멋진 로고와 홍보물들을 만들어주신 디자이너분들, 행사를 앞두고 홈페이지 개편이 필요했는데 며칠 밤을 새워 작업해주신 개발자님, 평등버스의 시작과 마무리 기자회견 사진을 멋지게 기록해주신 사진작가분, 활동가들의 밥값과 평등버스 기름값을 채워달라는 요청에 소셜펀치(940만원 목표로한 크라우드펀딩) 성공으로 화답해주신 분들, 그리고 이른 아침과 무더운 낮, 늦은 저녁시간을 마다않고 우리를 맞아주시고 지역 일정을 기획해주신 각 지역의 활동가분들과 시민분들까지. 많은 분들이 평등버스 기획단의 끼니 걱정을 하셨지만 실은 지역에서 저희에게 '밥 한끼 먹여'보내시느라 저희는 매끼니 배부르게 잘 먹고 다녔습니다. 안산에서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덕분에 집밥같은 도시락을 먹고 힘차게 마지막 지역 일정을 시작하기도 했으니까요. '연대'없이 평등버스는 출발도 도착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물적인 지원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 물적인 지원들이 저희가 달릴 연료를 채워주셨다면 쏟아진 지지와 응원은 평등버스 기획단의 든든한 '뒷빽'이 되어주셨습니다. 평등버스의 라이브방송마다 찾아와서 시청하고 함께 수다를 떤 사람들, 평등버스 멋지다고 칭찬하고 리트윗, 공유 등으로 알려준 사람들, 지나는 길에 함께 해준 사람들,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아낌없이 보내준 사람들,이 연대는 우리의 뒷빽이 되어주셨습니다.

귀한 만남의 순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혐오선동세력의 폭언과 포격을 마주하는 날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혐오가 우리의 마음을 할퀴었지만 우리는 웃을 수 있었고 춤출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준비한 이야기를 중단 없이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평등버스가 가는 길을 지지하고 응원해준 시민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평등버스 종이모형을 제작할 수 있는 도안을 만들어주신 류황원님께서 평등버스 기자회견 마무리 발언으로 남겨주신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마칩니다. 


”평등버스는 이와 같이 ‘평등과 인권이 보장되는 길’ 을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끈끈한 연대가 모인 결정체입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만 잘 살면 되는것 아니냐고, 왜 자기 일도 아닌데 피곤하게 오지랖이냐고. 저는 이런 질문에 누군가 했던 말을 빌려 대답하고 싶습니다. 이런 오지랖을 우리는 ‘연대’ 라고 합니다. 이것이, 언제나 소수자가 될 수 있고, 또 이미 소수자인 우리가 함께 사는 방법입니다. 이런 연대의 결정체로서, 진정으로 옮은 길을 위해서, 평등버스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