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21.02 | 78호현장돋보기 | 장연씨가 밥통에 보내는 편지 /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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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돋보기 ] 


장연씨가 밥통에 보내는 편지

한명희(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언제나 든든하게 우리의 가난한 배를 채워주신 밥통에게 연대의 인사를 보냅니다. 

폴폴나는 따뜻하고 달달한 밥과 반찬의 냄새가 투쟁의 고단함을 가끔은 잊게도 해주고 하루의 쉼표가 되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금 전국에 두 개의 농성장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세상은 끓고 있는데 여전히 시설 밖에서 거리로 한 발자국을 나가지 못하는 장애인거주시설에 입소한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정부가 코로나 방역 2단계를 선언하는 그 순간 장애인거주시설 내 입소한 장애인들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조치가 실행됩니다. 

그러던 작년 12월 25일 송파구 소재의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원’에서 거주인과 종사자를 포함한 70여 명의  집단 감염상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럴 때 정부는 어떤 대책을 택하였는가라는 물음의 답은 ‘코호트 격리’라는 수단입니다. 

한국 정부가 K방역으로 외국의 이목을 끈 것은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라는 슬로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거주시설 내에는 다른 룰이 적용됩니다. 신아원의 경우는 이곳을 지원했던 장애여성공감을 비롯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의 단체에서 긴급 분산조치를 끊임없이 외치면 기자회견 및 실천투쟁을 진행하였습니다. 40여 명의 거주인 감염자의 수만큼 작은 텐트를 준비해 서울시로 향했고, 12월 30일 분산조치 이행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아원은 1월 11일자로 전부 비워졌습니다. 거주인들은 질병관리본부가 허가한 가평과 동대문 소재 숙소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기본 자가격리 기간인 2주를 채우기는커녕 4일만인 15일, 다시 신아원으로 거주인들 일부가 재입소되었습니다.

이 일은 송파구, 서울시를 비롯한 정부가 장애인당사자의 긴급 분산조치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고 그에 대한 대책이 없었음을 증명합니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작년에 발의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이 10년이라는 기간 안에 모두 폐쇄되고, 중증장애인이 머무는 한 칸의 방이 일상의 전부가 아닌  인간다운 삶을 만들기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 중증장애인이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예산과 계획은 중앙정부로부터 지원하는 근거가 미비합니다. 제도가 자체별로 각각 다르게 있다보니 지역간의 격차 역시 큽니다. 

해치마당 광화문지하역사 농성장은 현재 신아원을 비롯한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들이 이 코로나라는 시국 속에서만이라도 빠르게 지역 사회에 분산조치 될 수 있도록 즉, 감영병 유행기간 동안 장애인거주시설 재입소 및 집단적인 거주 금지를 명령하는 것입니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좀 더 긴 호흡으로 전체 장애인 탈시설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긴급 탈시설은 지금 이 시기의 즉각적 대응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후 긴급탈시설이행과 장애인탈시설법 제정까지 올해의 봄까지 할 수 있도록 광화문지하역사는 또렷한 우리의 의제를 다짐하며 함께 갑니다. 


올해는 장애인권투쟁의 가장 큰 슬로건이였던 이동권 투쟁의 시작, 바로 2001년 오이도역 추락사고 참사가 2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이 2005년에 제정되고 그 이후 3차 계획까지 나왔지만, 여전히 지역 간의 이동권 편차가 크고 이에 대한 해결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들어선 행정수도인 세종시이지만 중증장애인이 탈 수 있는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콜택시가 현저히 부족하며, 이 특별교통수단인 누리콜의 민간위탁이 별다른 응모 절차 없이 10여년 간 같은 외부기관에게만 끊임없이 맞추어졌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벌써 세종시 농성장도 50여일차가 되어갑니다. 


속절없이 찬바람 부는 겨울에 농성장이 유지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함께 지켜가는 공간을 기점으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지켜갑니다. 그 투쟁의 공간을 지켜가는 이곳에, 언제나 같이 연대해주시는 밥통에 다시, 한번 무한한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