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앨범에 없는 얼굴들을 기억하며
현린(노동당 대표)

2월, 대부분의 학교에서 졸업식이 열립니다.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등교도 하지 못한 채 마지막 학년을 보낸 만큼, 역시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된 졸업식을 열지도 못하는 만큼, 올해의 졸업앨범은 더욱 특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올해 앨범에서, 아니 올해 앨범에서도 빠진 얼굴들이 있지는 않던가요? 예컨대, 당신의 앨범에 매일 우리의 밥을 준비해 주셨던 분들의 얼굴이 빠져 있지는 않던가요?
졸업앨범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긴 시간을 함께했던 이들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일상들을 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 앨범을 펼치면, 잊고 있던 사람들과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마법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당시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과 사건이 새로운 의미와 함께 되살아나기도 하죠. 학교 전경과 여느 교실은 물론, 체육관과 음악실, 미술실 같은 공간의 사진들은 이 기억의 소중한 배경이 됩니다.
그 기억들 중, 점심시간 또는 밥과 얽힌 일화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야자 때문에 도시락을 두세 개씩 넣어 다니던 시절부터 4교시 벨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식당으로 달렸던 급식 시절까지, 우리 몸의 리듬과 학교 규율 사이의 작지만 절박한, 갈등과 저항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식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긴 줄을 기다려 식당에 들어서면 매일같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는, 하지만 앨범에는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른 세상을 만들자는 우리가, 오랜 시간 싸워 성취한 일 중 하나가 무상급식제도입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습니다만, 서울시의 경우에는 올해 2021년, 그 동안 유예되어 있던 학년에까지 무상화함으로써 마침내 초중고교 전면 무상급식을 실현하게 됩니다. 논란 끝에 2011년 처음 실시한 이후 정확히 10년만입니다. 이로써 초중고생의 경우, 적어도 점심 한 끼만큼은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상급식제도의 실현 과정에서 우리는, 급식을 준비하고 배식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몫을 간과했습니다. 과거 가족에게 부과되었던 급식이라는 역할을 이제 국가와 지역의 공동체가 맡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도시락이나 급식비와 얽힌, 때로는 행복한 또 때로는 불행한 일화들은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밥을 준비하는 사람들, 교육공무직이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까지 보장하지는 못했습니다.
안락해 보이는 식당과 달리 뜨거운 불과 날카로운 조리기구들로 가득한 주방은 위험한 공간입니다. 그런 공간에서 비용 절감을 이유로 강도 높은 노동이 강제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이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는 분들 대부분은, 중년 이상의 여성노동자들입니다. 무기계약직 전환 투쟁에 승리했다고 하지만, 방학에는 임금이 없습니다. 밥값이 없습니다.
급식과 관련하여 각 가족이 짊어지던 부담과 비용을 국가와 지역 사회가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우리가 쟁취한 중요한 투쟁의 성과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가장 무거운 짐에 짓눌리고 있는 사람은 다시 각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불안정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우리의 앨범에 없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2월, 졸업앨범에서 얼굴과 이름이 지워진 사람들, 하지만 우리와 함께했고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교만이 아닙니다. 이 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노동을 하고도 우리의 앨범에서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진 얼굴들이 있습니다. 완전 무상급식이 실현된다는 2021년, ‘밥통’과 함께, 얼굴이 지워진 노동자들과 함께, 다른 세상을 향한 더 큰 투쟁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칼럼 ]
앨범에 없는 얼굴들을 기억하며
현린(노동당 대표)
2월, 대부분의 학교에서 졸업식이 열립니다.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등교도 하지 못한 채 마지막 학년을 보낸 만큼, 역시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된 졸업식을 열지도 못하는 만큼, 올해의 졸업앨범은 더욱 특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올해 앨범에서, 아니 올해 앨범에서도 빠진 얼굴들이 있지는 않던가요? 예컨대, 당신의 앨범에 매일 우리의 밥을 준비해 주셨던 분들의 얼굴이 빠져 있지는 않던가요?
졸업앨범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긴 시간을 함께했던 이들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일상들을 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 앨범을 펼치면, 잊고 있던 사람들과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마법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당시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과 사건이 새로운 의미와 함께 되살아나기도 하죠. 학교 전경과 여느 교실은 물론, 체육관과 음악실, 미술실 같은 공간의 사진들은 이 기억의 소중한 배경이 됩니다.
그 기억들 중, 점심시간 또는 밥과 얽힌 일화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야자 때문에 도시락을 두세 개씩 넣어 다니던 시절부터 4교시 벨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식당으로 달렸던 급식 시절까지, 우리 몸의 리듬과 학교 규율 사이의 작지만 절박한, 갈등과 저항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식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긴 줄을 기다려 식당에 들어서면 매일같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는, 하지만 앨범에는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른 세상을 만들자는 우리가, 오랜 시간 싸워 성취한 일 중 하나가 무상급식제도입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습니다만, 서울시의 경우에는 올해 2021년, 그 동안 유예되어 있던 학년에까지 무상화함으로써 마침내 초중고교 전면 무상급식을 실현하게 됩니다. 논란 끝에 2011년 처음 실시한 이후 정확히 10년만입니다. 이로써 초중고생의 경우, 적어도 점심 한 끼만큼은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상급식제도의 실현 과정에서 우리는, 급식을 준비하고 배식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몫을 간과했습니다. 과거 가족에게 부과되었던 급식이라는 역할을 이제 국가와 지역의 공동체가 맡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도시락이나 급식비와 얽힌, 때로는 행복한 또 때로는 불행한 일화들은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밥을 준비하는 사람들, 교육공무직이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까지 보장하지는 못했습니다.
안락해 보이는 식당과 달리 뜨거운 불과 날카로운 조리기구들로 가득한 주방은 위험한 공간입니다. 그런 공간에서 비용 절감을 이유로 강도 높은 노동이 강제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이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는 분들 대부분은, 중년 이상의 여성노동자들입니다. 무기계약직 전환 투쟁에 승리했다고 하지만, 방학에는 임금이 없습니다. 밥값이 없습니다.
급식과 관련하여 각 가족이 짊어지던 부담과 비용을 국가와 지역 사회가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우리가 쟁취한 중요한 투쟁의 성과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가장 무거운 짐에 짓눌리고 있는 사람은 다시 각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불안정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우리의 앨범에 없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2월, 졸업앨범에서 얼굴과 이름이 지워진 사람들, 하지만 우리와 함께했고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교만이 아닙니다. 이 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노동을 하고도 우리의 앨범에서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진 얼굴들이 있습니다. 완전 무상급식이 실현된다는 2021년, ‘밥통’과 함께, 얼굴이 지워진 노동자들과 함께, 다른 세상을 향한 더 큰 투쟁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