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 | 밥통 86호

2021.05 | 81호현장 돋보기1 | 어무이들, 신라대 동지들! 함께 머리띠 질끈 매입시다! /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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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돋보기 ]


어무이들, 신라대 동지들! 함께 머리띠 질끈 매입시다!

박경석(청소년 노동자와 함께하는 뚜벅이 상담실장) 


“아들 왔나~” “아들 밥 뭇나?” 최근 제가 신라대학교 대학본부동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입니다.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 51명 전원이 해고된 지 어느새 석 달이 코 앞. 신라대 학생도 아니고 부산시민은 더더욱 아닌 제가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분들의 투쟁에 연대하게 된 지도 벌써 두 달을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처음 신라대에 발걸음을 옮기던 때로 돌아가 봅니다. 1월 말 신임 부산일반노조 조직부장님으로부터 신라대학교에 청소노동자분들이 집단으로 해고되어 곧 투쟁에 들어갈 것 같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뒤 개기고 개기다가 2월 초,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분들의 중식투쟁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방학 중이라 아무도 없는 대학 안에서 투쟁가에 맞춰 페트병을 두드리는 신라대지회 조합원들을 처음 만나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회만 간단하게 진행하고 해산하던 시기라 조합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투쟁에 들어가게 된 이유들을 심도있게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앞으로 시간날 때 자주 연대하겠습니다, 라는 아주 의례적인 인사를 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개인적으로 참여하던 활동과 일상생활에 집중하느라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분들의 투쟁을 잊어가던 무렵, 신라대 청소노동자들께서 대학본부 건물을 점거하고 투쟁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3월 1일, 학교 교문에서부터 외부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다는 소식에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외부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연대동지들도 적어 힘드시지 않을까 싶어 혼자 신라대학교로 향했습니다. 경비들이 늘 지키는 정문이 아닌 다른 길을 지도로 검색해 대학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연대를 온 사람이라고는 저를 포함해서 세 명. 전날 민주노총 부산본부 차원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한 탓도 있었고 연휴 마지막 날이다보니 많은 분들께서 연대를 오시지 못한 듯했습니다. 바깥에 짙게 깔린 먹구름 탓인지 농성 초반이라 그랬는지 조합원분들의 얼굴 면면이 다 어두워 보였습니다. 바로 전날인 2월 28일자로 해고된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있기를 기대한 제가 이상한 놈이기는 하지만 투쟁은 어쨌든 미친 듯이 즐기는 자가 이긴다고 했던가요. 우중충한 분위기도 좀 깨고 몸도 마음도 조금 풀리셨으면 하는 생각에 저번처럼 의례적인 인사를 드리기보다 제 고향 밀양의 산골짜기 곳곳에서 불렀던 노래인 ‘내 나이가 어때서’를 음치에 박치인 제가 고래고래 불렀더랬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바라본 조합원분들의 모습에서 송전탑 건설을 막기위해 산골 마을에서 매일같이 경찰들과 대치하던 밀양 할머니들의 힘겨운 모습,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투쟁하던 청소년들에게서 마주했던 어두운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날부터 계속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분들게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고, 어떻게 이 투쟁을 함께할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투쟁하는데도 청년이나 학생들의 연대가 전무하다시피 한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신라대 재학생 1,005명께서 청소노동자 집단해고를 철회하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서명에 동참해주셨고 뜻있는 학생분들께서 지속적으로 농성장에 지지방문을 해주고 계셨지만, 학생들의 대의기구인 총학생회가 사측과 짜고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비방과 악선동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척이라도 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졌고 노골적으로 청소노동자들을 비방하고, 사실관계를 왜곡하며 노동조합을 혐오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꼭 총학생회처럼 투쟁을 탄압하고 노조를 혐오하는 청년학생들만 지역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노동자분들게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청년과 학생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힘을 얻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3월 중순경부터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여러 사회운동과 민중운동을 함께하고 있는 9개의 청소년, 청년단체와 개별 동지들과 함께 ‘신라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철회와 직접고용 쟁취를 위한 부산경남 청소년 청년학생 공동대책위(신라대청년학생공대위)’를 꾸리게 되었고, 미약하게나마 지역 내에서 청소년, 청년들이 신라대 청소노동자분들게 지지와 연대의 의사를 표시하며 투쟁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신라대학교 농성장에 연대방문을 올 때마다 인상깊은 에피소드를 하나씩 만들고 가는 것 같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두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월의 마지막 날, 농성중인 조합원들께서 총장님과의 면담을 위해 6층 총장실에 방문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조합원들과의 면담에 부담을 느끼셨는지 어쨌는지 총장님께서는 조합원분들을 피해 도망을 가시다가 결국 1층 현관에서 붙잡혀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날이 있었는데요, 그날 총장님을 비호하며 여성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고함을 치던 한 남성 직원의 입밖으로 조용히 새어나온 말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어디 청소하는 것들이...” 하도 주변이 시끄러운 탓에 조합원들이 듣지 못하셨기에 망정이지 조합원들께서 이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화가나고 상처를 받으셨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이 신라대학교 임직원들이 청소노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제서야 조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10년 20년을 같은 대학에서 함께 생활해온 청소노동자들이 로비에 앉아있는데 그 어떤 불편한 내색도,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아침저녁으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로비 중앙으로 출퇴근하고 때로는 괜히 농성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신경을 돋우는 총장님과 임원들의 태도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들에게 우리는 일찍이 사람이 아니었구나. 만화 송곳에 나오는 말마따나 여기 앉아있는 청소노동자들은 그냥 책상 위에 올려진 문서 속 덧뺄셈만 하면되는 숫자쪼가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소름끼치게 다가왔습니다. 


또 하나 기억나는 장면은 4월 10일, 청년학생공대위에서 청소노동자분들을 패널로 모시고 농성장에서 토크쇼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른한 오후 햇살이 쏟아지는 1층 로비에 열댓명 남짓의 청소년, 청년, 학생동지들이 모여 청소노동자분들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패널로 함께해주신 조합원들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아직도 저에게 인상깊은 이야기로 남아있습니다.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것은 2012년. 노조를 만들기 전 청소노동자들은 교수들의 이삿짐을 나르고, 부산지역 대학 총장들이 신라대에 모여 파티를 하면 고기굽는 불판을 나르고, 파티 세팅을 하고 파티가 끝나면 또 남은 뒤치다꺼리를 모두 도맡아 해야했다고 합니다. 주말에 교수들이 이사를 하면 주말에도 불려나오고, 휴일에 행사가 있는 날이면 휴일에도 불려나와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야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을 하고도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월급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든 뒤부터는 민주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학교에 의해 매년 고용불안에 내몰려 투쟁해야 했다고 합니다. 노조를 결성하자마자 모두가 함께 투쟁해 단체협약을 쟁취해 청소업무 이외의 잡일이 모두 사라지고, 월급도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 인상시키고, 원청 관리자들의 부당한 업무지시가 사라지는 등 노동기본권들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 2014년 청소노동자 고용승계를 거부해 79일동안 처절하게 투쟁한 끝에 학교측을 무릎꿇린 이야기는 정말이지 한편의 드라마처럼 들렸습니다. 코로나19 위기가 닥치기 이전부터 청소년, 청년노동자들은 시시각각 생명과 건강을 앗아가는 불안정노동과 산업재해에 시달려왔던 것처럼 이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 자체가 재난이나 다름없는 삶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본과 권력의 노조혐오와 파괴에 맞서 투쟁하는 우리 모두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반전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 “우리보다 청년 학생들, 정말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노동조합이 더 필요한 것 같아”라던 조합원분의 말씀은 그야말로 ‘연대’라는 단어를 상징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들이 늘 듣고 살아가는 자본과 권력들이 내뱉는 이야기들, 이십대는 이러쿵 청년들은 저러쿵 입방아를 찧어대며 세대를 가르고, 여성은 어쩌구 남성은 저쩌구 성별을 가르고 차별과 혐오를 조장해 온 세상을 가르고 어지럽히는 목소리들과는 그 질이 아예 다른, 평등과 연대에 뿌리를 둔 조합원분의 말씀은 함께 자리에 앉아있던 청소년, 청년, 학생동지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누군가 제게 물으시기를, “그렇게 매일 데모하는 아줌마들한테 뭐 배울게 있다고 그 뒤를 쫓아다니냐”고 물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사실 신라대 청소노동자분들은 제게 그 어떤 교수님들보다, 그 어떤 훌륭한 내용의 책보다도 많은 걸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공대위에서 함께 활동하는 청소년, 청년, 학생동지들은 늘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대학 내에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한 활동을 탄압하는 학교와 청소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탄압하는 학교는 한 몸임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는 사회와 청소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회는 분명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나날이 배우고 있습니다. ‘대결’이라는 노래 속 가사처럼 인간이란 똑같이 존중하며 서로 지지하고 연대할 때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분들을 통해 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 억만금을 준다해도 배울 수 없는 연대와 평등의 가치, 모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향한 꿈을 청소노동자분들의 투쟁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 신라대학교가 바뀌면 부산지역의 대학들도 분명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면 너무 지나친 믿음일까요. 하지만 저는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할 때 반드시 부산지역의 대학사회가 바뀔 것이라 믿습니다. 청소노동자를, 여성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것이라 믿습니다. 학생들을 미래의 인적자원, 재산으로 대상화하고 자본가들의 논리에 휘둘리는 대학들이 바뀔 단초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 투쟁은 신라대지회 30여명 조합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부산일반노조만의 투쟁이 아니라, 민주노총만의 투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멸위기에 내몰린 지방사립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 효율성과 이윤만을 위해 말단의 노동자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대학사회를 바꾸는 투쟁의 시작이 바로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분들의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지역의 청소년과 청년과 학생들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신라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기고자 합니다. 대학본부 현관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외치고자 합니다. “어무이들! 신라대지회 동지들! 함께 머리띠 질끈 매입시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