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21.07 | 83호밥알단 연대기 | 양파를 심고 캐는 농부 마음으로 밥을 지어 나누는 밥통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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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알단 연대기 ]


양파를 심고 캐는 농부 마음으로  밥을 지어 나누는 밥통

이명옥(평화어머니회  공동대표)



2년 전 제주 여성농민위원장의 양파 수확을 거든 적이 있다. 양파를 수확하는 것은 무척 힘들고 고단한 작업이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우선 양파를 뽑는 작업부터 쉽지 않다. 일일이 손으로 양파가 상하지 않도록 캐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양파 줄기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야 하는데 이 또한 상당히 힘든 작업이다. 작은 작두를 발로 지지해 고정하고 양파의 줄기를 잘라야 하는데, 양파 줄기가 쉽게 잘리지 않을뿐더러 작두를 고정하기 위해 발로 꼭 밟는 일 또한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른 양파 중 껍질이 벗겨지거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을 따로 골라낸 뒤 공판장으로 보낸다.

열심히 가꾼 양파를 거둘 일손이 부족하고 값이 떨어지면 밭에서 갈아엎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농부가 양파를 길러내는 마음과 다른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밥을 하는 마음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무한한 정성과 사랑, 희생이 없이는 힘든 농사를 지어 나누거나 밥을 지어 다른 사람을 먹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해고 노동자와 집회 현장을 찾아다니며 밥 나눔을 하는 단체가 있다. 밥통 밥알단도 그런 단체 중 하나다. 수백 명을 위해 몇십 킬로의 양파를 다듬어 장아찌를 담거나 썰어 볶고 밥을 하고 국을 끓이는 일은 농부가 양파를 수확하는 노고와 견주어 결코 덜하지 않다.

그 힘든 노동을 대가없이 1년 내내 밥통의 밥심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준비된 밥을 수백 명 혹은 수십 명에게 나누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밥을 푸고 반찬을 담아주고 국을 퍼주고 후식으로 과일이나 차를 나눠주고 빈 그릇과 쓰레기를 정리해 사무실로 돌아와 설거지를 끝내야 출동의 일과가 마무리된다.


한 알의 양파가 소비자의 손에 쥐어지기까지 양파를 심고 거둔 이들의 땀과 노동이 있다는 사실이나, 한 그릇의 밥을 먹기까지 그 밥상을 준비한 이들의 땀과 노동과 정성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산다.


양파가 풍년이라 양파값이 폭락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코로나19를 핑계로 해고된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이 6월 말로 410일을 넘어서고 있다. 함께 살기 위해 농사를 짓는 마음,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땀 흘리며 밥을 짓는 밥통 식구들의 마음, 노동자로 함께 일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리에서 지새우는 이들의 마음을 모든 이들이 헤아려 볼 수 있으면 한다.


‘우주의 중심은 가장 아픈 곳’이라고 했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해고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지어 먹이는 밥통의 식구들이나 농부들은 가장 아픈 우주의 중심을 알고 그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보듬는 귀한 사람들이다. 따뜻한 밥통의 밥 나눔으로 농부들, 해고노동자가 새 힘을 받고 힘차게 일어나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