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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 | 84호땅과 사람 | 농자천하지호구(農者天下之虎口) /박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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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과 사람 ]



 농자천하지호구(農者天下之虎口)

박희준(농부)


 


농사꾼이 농사짓는 과정을 공장처럼 부서로 나누어 본다면 기획부, 생산부, 품질관리부, 영업부, 총무회계부쯤이 될 것이다. 그런데 농사꾼은 혼자 이 모든 부서를 담당해야 한다. 

고추농사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품종을 심을지 고르고 씨뿌릴 시기도 정해야 한다. 모종상에 씨앗을 넣고 이식을 해서 키운 뒤 밭으로 내어갈 시기와 밭을 어떻게 장만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구체적인 계획이 서면 생산에 들어간다. 

모 키우는 데는 90일의 시간이 걸리고 밭으로 아주심기한 뒤로 85일이면 첫 수확이 가능하다. 적당한 거름도 줘야 하고 병충해를 방제하는 것을 잘해야 좋은 품질의 고추를 얻을 수 있다. 햇볕이 좋을 경우 직접 햇볕에 말려 태양초로 건조하면 좋은데 자칫 소나기를 맞아버리면 곰팡이가 슬어 고추를 못 쓰게 되기도 한다. 건고추로 잘 말렸다 하더라도 농산물 수집상(장사꾼)을 잘못 만나면 헐값에 넘기게 되기도 한다. 


기상이변과 농사기술의 미숙 외에도 그 해가 풍년인가, 흉년인가에 따라 가격이 등락한다. 실제로는 국내생산량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대기업의 경우 동남아 국가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가공해서 국내에 팔기도 한다. 

곡물 자급율이 21.3%인데 쌀을 제외하면 5% 정도라고 한다. 즉, 곡물 국내소비량의 95%는 수입에 의존하고 5%에 해당하는 국산 곡물만 농촌경제연구원에서 공판장을 통해서 가격을 통제 한다. 


트랙터를 대리점에서 살 때 현금을 들고 가면 일억 원짜리를 팔천만 원에 살 수 있다. 농협에서는 7년 분할로 칠천만 원만 내면 된다. 트렉터 생산회사에서 농협에 납품하는 가격이 사천에서 사천오백만 원이기 때문에 농협은 그 가격으로 팔 수 있다. 

국내에서 팔리는 외국산 트랙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외국에서는 국내의 절반 값에 살 수 있다. 한 술 더 떠서 2017년부터 농기계는 정가를 표시하지 않아도 되도록 보장을 해주고 있다. 껌 한 통도 정가를 표시하고 있는데...


산재보험도 들 수 없는 농민

농산물재해보험을 들어도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농민 


호구라는 말이 있다.

어리숙해서 등쳐 먹기 쉬운 상대를 칭하기도 하고

호랑이 입 안에 있는 위급한 상황을 뜻하기도 한다.

농산물 가격은 생산비를 건지기도 힘든데 

농기계와 농자재 가격은 왜 그리 생산자와 판매자를 위할까. 


農者天下之大本 이라는 말은 허구이다.

農者天下之虎口 만 있을 뿐이다. 


농진청장으로 퇴직한 공무원의 페이스북에 농기계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답글을 달았던 적이 있다. 

농식품부와 통계청에서 근무했던 한 퇴직자가 내 글에 답글을 달았는데, 주고 받은 대화를 여기 덧붙인다.




*

나: 기계화는 중요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똑같은 트랙터 가격이 외국보다 2배 비싼 이유가 뭘까요?

그러니 초기 생산비가 높아지고 농사꾼끼리 불화가 생기는 거지요. 


퇴직공무원: 국가 보조가 많으니 비싸도 잘 팔리는 부작용 아닐까요? 자동차처럼 수요가 많으면 많이 낮아지겠지요. 


나: 그럼 보조 못 받는 경우가 99%가 넘을 텐데 보조 몇 건 때문에 대부분의 농사꾼에게 2배 가격을 받는다고? 밥은 왜 먹습니까? 


퇴직공무원: 보조받아 사는 경우가 더 많을걸요? 면세유류도 받아 남는 건 자동차에 넣기도 하고 알뜰히 고쳐 쓰지 않고 버리는 농기계도 많고 영농규모에 비해 과잉구입이 많다 들었어요. 


나: 트랙터를 누가 보조를 주던가요? 저는 아세아 관리기 쓰고 있는데 40년이 넘었을 겁니다. 일제완제품 수입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동관리기 3년 지나면 못 씁니다. 그렇게 만들어도 정부에서 돈을 주니 기술개발이란 걸 안 하지요. 요즘 태광관리기 많이 쓰더군요. 일제가와사키엔진을 얹어 놓았지요. 


농사지어봤습니까..?

겪어보지 않고 그저 카더라는 소문이 진실인 양 믿는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한 나라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기는 힘들 거라 보이는군요. 


아... 업체에 기생하는 공무원은 본 적이 있어요 ㅎㅎ 


차를 예로 드셨으니 한마디 보태면 16년에 현대차가 한전부지를 10조 원에 인수한 뒤 5년 만에 1톤 트럭 값이 딱 2배로 올랐는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