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21.09 | 85호현장 돋보기 | 우리는 노조가 처음입니다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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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조가 처음입니다



우리는 노조가 처음입니다.

어쩌다 화이팅을 외쳐 보긴 했지만, 투쟁을 외쳐 본 적은 없었습니다.


금년 초 예고 없이 삭감된 보험 판매수수료 때문에 전국의 한화생명 설계사들은 분노 하였고,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동료들끼리 온라인 단체 모임방을 만들어 우리에게 처한 현안의 토론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회사는 보험 판매 수수료를 계속하여 내리고 있었고, 특히 지난 3년 동안은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도록 그동안 쌓아둔 미지급 수수료를 깍은 수수료 대신 몰래 보충해 주었습니다. 세상은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사람간의 만남조차 허락되지 않았지만, 모두는 들불처럼 일어났고 그 불길은 전국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만들어진 여성조직 입니다. 서로 얼굴을 모릅니다. 한 두번 봤다 해도 마스크가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뭉쳤습니다. 지난 1월8일부터 각 지역의 온라인 모임이 따로 마련되어 본격적인 대처 방안을 모색하다가 우리도 노동조합을 결성해보자 하였던 것입니다. 온라인 단체 모임방은 최대 인원인 3천명이 넘어섰고, 천오백명이 한계인 또다른 온라인 모임 방까지 넘치게 되었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오던 우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350% 지급받던 수수료가 3년동안 230%로 줄어들어도 회사가 새로 바뀐 규정에 “싸인하세요"하면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던 우리가 이제는 회사의 부당함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면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2020년 12월 30일에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으로 보험설계사도 20년 만에 합법적 노동조합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월 21일 우리는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과 집회를 통해 단체교섭 촉구를 수차례 진행하였으나, 회사측은 계속 거부를 하였고 우리는 이에 저항하다 3월3일 부터 천막농성을 시작하였습니다. 회사측의 모진 노조 흔들기도 있었고 탄압도 많았습니다. 회사는 노동활동을 못하게 하려고 각 지점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노조 간부는 물론이고 조합원까지 업무방해, 명예훼손, 모욕죄, 집시법 위반 등으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걸었습니다.


4월 한화생명에서는 물적 분할 방식으로 자회사형 법인 보험대리점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로 우리 2만여 설계사들을 강제이직시켰습니다.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주총회를 통해 주주들의 결정에 의해 우리는 분사된 회사로 강제로 넘어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2만여 설계사들에게 '위촉(고용)승계'라는 동의서를 억지로 쓰게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이에 저항하였으나 거대 자본은 힘의 논리로 우리를 참으로 가혹하게도 짓누르고, 우리는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에 위협이 따르기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영업현장에서는 정상적인 업무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시스템 미비는 물론이고 보험상품 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수수료규정도 오픈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적 분할 이라는 미명으로 우리 2만의 설계사들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왜? 회사는 그렇게도 서둘러 분사를 해야만 했을까요?

우리노동조합에서는 이 현안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정리하고 영업현장을 안정시키고자 교섭촉구를 했으나 사측은 갖은 핑계를 대면서 교섭을 회피합니다. 




오늘(8월29일)은 천막농성 180일 째입니다. 여의도 63빌딩앞에 천막을 치고 전기조차 없는 이곳에서 계절을 몇 차례 보내고 있습니다.

모진 강바람과 추위를 핫팩으로 견디기도 했고, 그 무덥던 한여름은 숨고르기조차 힘들게 헉헉대며 각종 해충들과도 힘겹게 싸웠습니다. 모기의 기습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고, 천막 안에 기어드는 ‘발 많이 달린 놈’, ‘털 많이 난 놈’들이 몸을 타고 기어 오를 땐 우리의 지친 몸은 소름으로 저항하며 버텨왔습니다. 


우리 2만여 조직은 모두 여성입니다. 어머니로, 누나로 많은 것을 양보하며 살아온 우리는 대한민국의 여성들입니다. 음식을 할 때도 한 입 크기로 어슷썰어 한소끔 끓이라 하면 알아서 잘합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늘 그렇게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답니다.

어슷에도 길이가 있고 한 입에도 입 크기가 다르고 한 소끔에도 끓는 점이 다르다 합니다. 세상은 변하였고, 이제 우리도 억지로 참거나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 합니다.

그것이 짜장면이든 생선 가운데 토막이든....


회사는 어마어마한 이익금으로 배당잔치를 할 때 우리의 급여는 늘 쪼그라듭니다. 내리기만 했지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습니다.

모질게 춥거나 더운 날에도 우리는 사무실이 아닌 거리로 나가서 보험영업을 하기 위해 고객을 찾아다녀야 합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세상 사람들이 만남 자체를 꺼릴지라도 우리는 사람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먹고 죽을 돈도 없다는 사람들의 거절에도 우리는 그들을 설득하여,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라고 전합니다. 병이 들거나 소득이 끊겼을 때 치료도 받고, 생계비도 미리 준비하라고 말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합니다. 거대자본가는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날 그렇게 지독하게 우리를 거리로 내몰아 일을 시켜서 건물짓고 배불리면서 우리 설계사들의 급여를 끊임없이 내리기만 했던 그 기나긴 세월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63빌딩을 우리 보험설계사들은 '피골탑'이라합니다. 뼈 빠지게 일해서 피눈물로 지어낸 빌딩이라는 뜻이지요. 


우리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있습니다. 노동3권 즉, 단결할 권리, 협상할 권리, 파업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욕심쟁이들이 아닙니다. 더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노예가 아닙니다. 


63빌딩(피골탑) 앞에는 투쟁하는 동지들의 천막이 있고, 그 안에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김미정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 사무국장. 

한화생명지회 단체교섭을 위해 183일째 천막사무소에서 길거리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