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21.10 | 86호땅과 사람 | 불임 깻잎과 행복하지 않은 고기 /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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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과 사람 ]


불임 깻잎과 행복하지 않은 고기



밥통 웹진을 구독하시는 좋은님들, 안녕하세요 :) 


 저는 2014년에 웹진 <밥통>에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리고 오늘 7년 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되었어요. 그때는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 '동자동 사랑방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의 글을 썼지요. 이제는 시골에서 자급을 향해 따박따박 걸어가는 농부로 이 글을 씁니다. 


 도시를 떠나 자리잡은 곳은 홍성이에요. 귀농일번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귀농·귀촌인이 많아 처음 정착하기 좋은 곳이었어요.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시작된 유기농이 제법 일반적인 농법이 되었고 자연재배 협동조합도 있어요. 그런데 홍성은 나즈막한 구릉지가 많은 지형 탓에 축사가 많아요. 축사가 많으면 물과 공기, 땅이 오염되기 쉽죠. 홍성도 예외가 아니어서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민이 많은 곳이지요.


 한 번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돼지를 실은 트럭이 지나갔어요. 지독한 냄새. 트럭이 지나가고서도 한참동안 냄새는 주위 공기를 가득 채웠어요. 돼지축사 안은 어떨지 짐작하기도 겁나는 냄새였어요. 돼지축사는 사방이 툭 터진 소축사와 달리 꽁꽁 닫혀 있는데 그 이유가 냄새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자기 똥냄새(유독가스?)에 취해서 죽는 돼지가 많다고 해요.




 돼지는 사실 개보다 지능이 높다고 하죠. 돼지를 넓은 야외 축사에서 키우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밥먹는 곳, 진흙목욕하는 곳, 똥오줌누는 곳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어요. 원래는 깔끔한 녀석들인데 쇠로 만든 한 뼘 크기 틀 안에 가둬 키우니 얼마나 괴로울까요. 즐거운 순간이 있을까요? 사람이 그런 지경에 놓였다면 자포자기 하거나 미치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돼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장식 대형축사는 동물이 동물답게 살아갈 권리를 뺏고 있어요. 사람의 식욕을 채우기 위해 살다가 농장주나 자본가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동물들. 행복하지 않은 동물의 살을 먹는다는 것,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요.



 

 지금 정착한 곳은 공장도 축사도 들어설 수 없는 상수원보호구역이에요. 산이 깊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곳곳에 있어요. 축사냄새를 맡지 않아서 좋은 곳인데 이곳에서도 마음이 불편한 광경을 보고 말았어요. 가로등을 띄엄띄엄 밝혀둔 어두운 시골길을 산책하다가 멀리서도 환하게 빛나는 곳을 봤어요. 크리스마스 장식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밝고 아름다운 조명. 그 아래에 들깨가 오밀조밀 자라고 있어요. 닭갈비에 들어가는 깻순따는 밭. 밤에 잠을 자야 들깨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순을 계속해서 얻기 위해 불을 밝혀 들깨를 속이는 농사. 누구는 스트레스 깻잎이라 하고 누구는 불임 깻잎이라 부르는 깻순.





 농업이 얼마나 지구를 망치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에요. 소수의 농부가 다수의 도시인을 먹이기 위해 대형기계를 이용해 대량으로 짓는 농사. 큼직하게 많은 양을 수확하려면 퇴비든 비료든 거름을 많이 넣어야 하죠. 균형이 깨진 과잉 영양은 작물의 병을 부르고 벌레를 몰고 오니 농약도 치게 되고 미생물을 포함한 자연생태계가 파괴된다고 해요. 식물이 다 빨아들이지 못한 유기물은 지하수로 스며들어 바다까지 흘러간다고 해요. 땅과 물, 공기를 오염시키면서 기른 농산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셈이죠.


 저는 지하수 고갈을 걱정해 되도록 밭에 물을 주지 않아요. 화석연료로 공장에서 만든 거름을 사지 않아요. 닭장 바닥의 닭똥과 왕겨 섞인 흙을 긁어 뿌리거나 오줌을 받아두었다가 삭힌 거름을 가끔 주어요. 빈약한 거름 탓에 어떤 작물 농사는 망하기도 하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 그 자리를 매워주어요. 농산물을 팔아 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반찬거리 사러 어디를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의 농사, 그 덕에 차도 덜 타고 쓰레기도 덜 만드니 마음이 좋아요.


 소의 트림과 방귀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1위라고 하던가요. 사료용 곡물 생산을 위해 열대 우림에 불을 지르고 그 산불이 몇 달 동안 꺼지지 않는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나요. 동물성 식품은 식물을 직접 먹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자원을 쓰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채식을 결심했어요. 지금은 완전채식은 아니지만 채식위주의 식습관 덕에 식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아요.


 도시에서 일하고 번 돈으로 다른 사람이 기른 농산물을 사먹는 것 대신, 저는 제 노동을 바로 농산물로 바꿔 먹으며 살고 있어요. 벌레 먹고 못 생긴 농산물이라도 제 손으로 기른 싱싱하고 단단한 농산물을 먹는다는 것, 도시에 살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즐거움이에요. 움트는 생명을 지켜보는 경이로움, 철마다 다른 농산물을 수확하고 맛보는 풍요로움은 도시쟁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은혜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가끔 상상해요. 도시에 사는 사람 절반이 도시를 버리고 시골에서 스스로 농사지어 먹고사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는 환경오염, 기후위기, 자본주의 같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어린 세대가 자라날 것 같아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단지 저 혼자는 아닐거에요. 혹시 이 글을 통해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신날까 기대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류승아 농부

웹진 <밥통> 편집위원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물려줄 망가진 지구가 미안해 불편함을 견디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