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21.12 | 88호땅과 사람 | 농지 : 농민만 가질 수 없는 땅 /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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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 농민만 가질 수 없는 땅


눈만 뜨면 뉴스에서 들려오는 부동산, 부동산, 부동산. 차를 타고 달려보면 끝없이 펼쳐진 땅, 땅, 땅. 땅이 이렇게 넓은데 농민에게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요. 땅은 농민의 것이 아닌 ‘부동산’. 농민들에게 땅이 농지가 아니라 부동산이라는 현실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알고 있는 도시인은 그리 많지 않을 거에요. 


땅을 소유하지 못해 위기에 몰린, 유기농 채소를 기르는 한 농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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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전, 귀농지를 찾아 헤매다 어느 마을 이장님을 만났어요. 이장님은 젊은 사람이 마을에 와서 농사지으면 참 좋겠다며 적극적으로 농지를 알아봐주셨어요. 이장님의 친척이 소유한 땅을 10년 동안 빌리기로 임대계약을 하고 정착한 곳이 홍성이에요.


무농약 재배 3년의 시간을 거쳐 유기농 인증을 받아 4년이 지났어요. 올해 초 시설농사 지원사업이 있어 신청하려고 보니 자기 땅이거나 십 년 이상의 농지임대계약서를 첨부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갱신계약을 하려고 땅주인에게 말을 꺼내보니 더는 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들이 정년퇴임하면 와서 농사를 지을 거라고 해요. 사실일까요? 아들은 농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공들인 7년이란 시간동안 땅이 일반농지에서 유기농 농지가 되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더 비싼 도지를 받고 빌려줄 작정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도지를 두 배로 올려드리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하우스 네 동. 이사하려면 하우스 뼈대를 다 뽑아야 해요. 하우스를 옮기는데 드는 비용이 2천만 원입니다. 지금은 철 값이 너무 올라버려서 새로 지을 수도 없어요. 생돈, 2천만 원을 들여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에 내몰리지 말아야지.’ 하며 농지은행을 찾아갔어요. 농지은행이 갖고 있는 농지가 많지 않습니다. 마음에 드는 땅이 없어요. 최후의 방법은 땅을 사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현금이 많을 리가 없잖아요. 대출을 받아서 사야죠. 다행히 장기대출 지원사업이 있어요. 그런데 대출 금액이 한 평당 3만 6천원이에요. 시세의 1/3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땅을 살 수 없는 조건이에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요즘은 택배유통망이 잘 되어 있어 소비자와의 거리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요. 그래서 수도권에서 더 멀리, 땅값이 더 싼 곳으로 농지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홍성에서는 유기농 퇴비를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퇴비도 직접 만들어 써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제 7년이란 시간동안 공들인 땅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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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경자유전의 원칙'

①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헌법이 보장하는 ‘경자유전’은 이미 개나 줘버린 지 오래되었죠. 한 발 양보해 아파트, 상가와 같은 건물은 부자들의 돈놀이 대상으로 쓰게 눈감아준다고 해두죠. 농지만큼은 농민이 소유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소유가 어렵다면 적어도 쫓겨날 위험 없이 마음껏 농사지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농민은 어디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까요?



Ⓒ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류승아 

마수세미 뜨기, 전통매듭 강사. 농사, 마을시장 홍보 등으로 세상과 연결, 

생태적인 세상을 바라며 실천하며 사는 농부.

게다가 협동조합 ‘밥통’ 집행위원, 《밥통》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