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22.07 | 95호밥통책방 | 감염병 시대에 여성 노동자 /양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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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시대에 여성 노동자




기획이나 의도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의 결과물이 되었다. 알아야 투쟁도 연대도 더 잘한다. 나는 처음부터 이 한 가지 마음이었다. 비정규 노동자라고 해서 항상 옳거나 선한 사람들인 건 아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투쟁이 왜 정당한가?’를 말한다. 어쩌면 이것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우리가 왜 옳지 못한 선택을 했을까, 우리가 왜 이렇게 보잘것없을까, 우리가 왜 이토록 미워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한다. 덮어놓고 투쟁하고 연대하면, 빨리 무너지고 쉽게 주저앉는다. 알아야 미워하지 않고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알아야 실망하지 않고 오래갈 수 있다. 알아야 저도 모르는 마음의 결을 헤아려 보듬어 줄 수 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누군가 이 시대를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차분히 지켜보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감염병 시대의 여성 노동자』 기획의 말 中에서)


『감염병 시대의 여성 노동자』는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이하 서비)가 올 봄 발간한 책입니다. 책의 내용이 되는 여섯 명의 여성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는 2020년 한 해 동안 이루어진 결과물이구요. 약 1년의 시차가 있는데 아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곁과 귀를 내어줄 수 있을 “우리”가 좀 더 넓어지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말은 ‘나’와 ‘서비’가 ‘당신들’을 꼭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2020년 2월 대구 신천지 교인 31번째 확진자로 인해 운동을 비롯 거의 모든 것이 멈출 수밖에 없었던 시절, 서비는 기존의 연대사업을 잠시 멈춘 후 비정규 노동을 주제로 인터뷰를 기획, 진행하였습니다. 참 부지런하다, 싶기도 하시겠지만 그 안엔 말하기 조금 곤란한 속사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눈엔 대구 신천지 교인과 노동운동하는 우리가 그다지 다르게 보이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겁니다. 

두려움에 더욱 날카로워진 분노는 혐오의 감정으로 이곳저곳 불똥을 튀기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가운데, ‘서비’는 그런 안타까운 감정의 함정에 빠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간 이미 충분히 겪어본 감정이기에, 그리고 그 감정은 출구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비는 서비를 벗어나 ‘친구’ 한 명 한 명을 찾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라는 울타리에 갇혀 방어적으로 ‘나 아닌 것들’과 ‘나’ 모두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인터뷰에 참여해준 친구들은 서비에게 자신의 노동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그리고 그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를 차근히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서비는 그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되었는데, 이야기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마 이야기를 발화하는 친구에게서 어떤 ‘힘’과 ‘믿음’을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는 부지불식간에, 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혐오의 감정은 어떤 ‘정당한’ 물꼬를 따라 흐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예, 정당한 물꼬를 따라서요. 신기하다면 조금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는데, 서비와 친구들 사이의 대화가 책이라는 형태로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여섯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당신들에게도 어떤 ‘힘’으로, ‘신기한 경험’으로 다가가리라, 조심스럽지만 믿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조심스럽게 그 믿음은 또 다른 믿음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당신들의 그 느낌과 경험이 분명 당신을 또 한 명의 친구로,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 서비는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했지만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친구들’ 덕분입니다. 서비의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서비의 새 친구들이 되어주리라 희망합니다.



양순모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 회원으로 활동하며 대학원에서 한국근대문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