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교통 – 교통학자 조중래의 마지막 인터뷰
조중래, 김상철, 전현우 저자(글) 빨간소금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수도권 중에서 가장 교통이 취약한 곳으로 알려진 지역입니다(그래서 경기도에서 주거비가 가장 저렴하기도 합니다). 서울로 접근하는 대중교통으로 광역버스가 있습니다만 배차간격과 교통체증으로 인해 꽤 긴 출근시간을 감수해야 합니다. 제가 차멀미가 심해서 광역버스는 최후의 선택지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근래 개통된 지하철이 1호선의 지선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만 배차간격이 20분이라서 시간 조절을 매우 잘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더 심각한 것은 지역 내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입니다. 원하는 곳으로 가기까지 노선이 너무 많이 돌아가기도 하고, 배차간격도 불안정한 데다 안전운전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도 상당합니다. 문제는 시 전체의 버스운행을 단 하나의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데, 시에서 이에 대한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관련한 시청의 업무 내용과 자료에 관한 법률로 정해져 있는 정보공개 요청에 대해서도 철저한 거부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 교통의 공공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련한 책들을 간간히 읽던 중 최근 《시민교통》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교통의 공공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공공교통네트워크의 김상철님이 암 투병 중이던 교통학자 고 조중래님과의 마지막 인터뷰를 정리해 출간한 책입니다. 교통정책 수립과 교통건설계획의 평가,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위해 필수적인 교통수요 분석을 위한 조사 및 데이터 구축을 위해 평생을 일해온 조중래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비판적인 눈을 가진 시민들이 교통정책과 계획, 그리고 평가자료들을 이해하고 참여할 힘을 길러야 한다고 당부하며 그 방법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합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교통정책이 사용자의 입장에서 수립/평가되고, 각 지방의 자립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 수립/추진되도록 싸워볼 수 있으며, 관료와 전문가의 기득권에 맞서 교통정책에 시민의 자리를 만들고 토론을 통해 교통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교통정책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의미로요.
조중래교수의 건강 사정으로 인해 인터뷰가 가능한 시간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이 책에서는 교통건설사업의 사업추진 타당성을 평가하는 근거로 역할하고 있는 현행의 사업 타당성 분석에 사용되고 있는 모델인 ‘비용절감 접근법’이 갖고 있는 한계와 그로 인해 생기는 교통정책의 편향에 대해 다루면서, 그에 대한 대안적인 모델인 ‘소비자잉여 접근법’을 소개와 전문가들에 의해 생산되는 사업 타당성 분석자료를 해석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교통수단의 선택권을 가짐으로써 편익을 얻을 수 있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교통건설사업의 타당성을 분석하는 ‘소비자잉여접근법’과 달리 ‘비용절감 접근법’은 공급자 입장에서 속도 위주의 단일한 평가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실제로는 사용자들이 거의 체감하기 어려운 불과 몇 분의 시간 단축 효과를 통행량이 많기만 하면 편익이 크게 발생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대중교통을 신설할 경우 전체 이동시간이 늘어나게 되어 오히려 손해가 되는 마이너스 편익(부편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평가되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계산된 편익을 금액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자동차 운전자들의 시간가치를 버스나 철도 등의 대중교통 사용자들의 시간가치보다 훨씬 높게 책정하여 자동차 사용자의 편익이 더 커지도록 한 번 더 부풀려진다고 합니다. 그 결과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를 위한 도로위주의 교통정책이, 그리고 통행량이 많은 중앙 대도시 위주의 교통건설이 추진되도록 하고요. 더구나 모든 교통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보행으로 시작하여 결국 보행으로 끝나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보행이나 심지어 자전거는 아예 교통수단으로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교통정책이나 사업계획의 평가에서 제외된다고 합니다. 결국 이러한 편향된 접근법이 교통정책에서 보행과 대중교통을 뒷전으로 미루고 자동차 위주, 대도시 위주의 정책을 추진하도록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평가와 예측 방법이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려면 후에 동일한 자료와 방법을 이용해서 검증을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확인하는 재현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사후 검증작업에 필요한 자료의 공개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현행 법률(‘국가통합교통체계효율화법’의 제113조직무상 알게 된 비밀의 누설 등 금지 조항) 때문이기도 한데, 정책이 갖추어야 할 공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규정의 개정을 통해 사후 검증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해 보입니다. 교통정책의 수립과 계획에 대한 평가가 동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완성된 정답이 나오는 자판기 같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요와 입장을 가진 사람들 간에 공공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에 따른 편익의 배정과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일인 만큼, 대안적인 의견이 제시되고 토론이 이루어지는 민주적인 영역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사후에도 분석과 평가에서 놓치고 잘못한 부분을 찾아내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자료를 공개하고 활용의 편의를 제공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수포자인 입장에서 각종 함수와 적분식이 마구 출몰하는 책을 읽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만, 암 투병중에도 남겨진 귀한 시간을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을 조중래교수님과 그 메시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재로 사용한 자료를 부록으로 붙여가며 인터뷰를 정리하느라 애쓴 저자들의 노력을 생각하며 수포자의 일탈을 감행해 보았습니다. 이 일탈에 잠시 동행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글. 김종민
'서울로 뚜벅이 출퇴근하는 시흥시 은행동 동네 아저씨'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김종민님은 밥통 창립멤버로 밥통 감사로 활동중이다.
시민교통 – 교통학자 조중래의 마지막 인터뷰
조중래, 김상철, 전현우 저자(글) 빨간소금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수도권 중에서 가장 교통이 취약한 곳으로 알려진 지역입니다(그래서 경기도에서 주거비가 가장 저렴하기도 합니다). 서울로 접근하는 대중교통으로 광역버스가 있습니다만 배차간격과 교통체증으로 인해 꽤 긴 출근시간을 감수해야 합니다. 제가 차멀미가 심해서 광역버스는 최후의 선택지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근래 개통된 지하철이 1호선의 지선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만 배차간격이 20분이라서 시간 조절을 매우 잘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더 심각한 것은 지역 내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입니다. 원하는 곳으로 가기까지 노선이 너무 많이 돌아가기도 하고, 배차간격도 불안정한 데다 안전운전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도 상당합니다. 문제는 시 전체의 버스운행을 단 하나의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데, 시에서 이에 대한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관련한 시청의 업무 내용과 자료에 관한 법률로 정해져 있는 정보공개 요청에 대해서도 철저한 거부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 교통의 공공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련한 책들을 간간히 읽던 중 최근 《시민교통》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교통의 공공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공공교통네트워크의 김상철님이 암 투병 중이던 교통학자 고 조중래님과의 마지막 인터뷰를 정리해 출간한 책입니다. 교통정책 수립과 교통건설계획의 평가,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위해 필수적인 교통수요 분석을 위한 조사 및 데이터 구축을 위해 평생을 일해온 조중래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비판적인 눈을 가진 시민들이 교통정책과 계획, 그리고 평가자료들을 이해하고 참여할 힘을 길러야 한다고 당부하며 그 방법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합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교통정책이 사용자의 입장에서 수립/평가되고, 각 지방의 자립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 수립/추진되도록 싸워볼 수 있으며, 관료와 전문가의 기득권에 맞서 교통정책에 시민의 자리를 만들고 토론을 통해 교통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교통정책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의미로요.
조중래교수의 건강 사정으로 인해 인터뷰가 가능한 시간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이 책에서는 교통건설사업의 사업추진 타당성을 평가하는 근거로 역할하고 있는 현행의 사업 타당성 분석에 사용되고 있는 모델인 ‘비용절감 접근법’이 갖고 있는 한계와 그로 인해 생기는 교통정책의 편향에 대해 다루면서, 그에 대한 대안적인 모델인 ‘소비자잉여 접근법’을 소개와 전문가들에 의해 생산되는 사업 타당성 분석자료를 해석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교통수단의 선택권을 가짐으로써 편익을 얻을 수 있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교통건설사업의 타당성을 분석하는 ‘소비자잉여접근법’과 달리 ‘비용절감 접근법’은 공급자 입장에서 속도 위주의 단일한 평가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실제로는 사용자들이 거의 체감하기 어려운 불과 몇 분의 시간 단축 효과를 통행량이 많기만 하면 편익이 크게 발생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대중교통을 신설할 경우 전체 이동시간이 늘어나게 되어 오히려 손해가 되는 마이너스 편익(부편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평가되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계산된 편익을 금액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자동차 운전자들의 시간가치를 버스나 철도 등의 대중교통 사용자들의 시간가치보다 훨씬 높게 책정하여 자동차 사용자의 편익이 더 커지도록 한 번 더 부풀려진다고 합니다. 그 결과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를 위한 도로위주의 교통정책이, 그리고 통행량이 많은 중앙 대도시 위주의 교통건설이 추진되도록 하고요. 더구나 모든 교통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보행으로 시작하여 결국 보행으로 끝나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보행이나 심지어 자전거는 아예 교통수단으로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교통정책이나 사업계획의 평가에서 제외된다고 합니다. 결국 이러한 편향된 접근법이 교통정책에서 보행과 대중교통을 뒷전으로 미루고 자동차 위주, 대도시 위주의 정책을 추진하도록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평가와 예측 방법이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려면 후에 동일한 자료와 방법을 이용해서 검증을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확인하는 재현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사후 검증작업에 필요한 자료의 공개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현행 법률(‘국가통합교통체계효율화법’의 제113조직무상 알게 된 비밀의 누설 등 금지 조항) 때문이기도 한데, 정책이 갖추어야 할 공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규정의 개정을 통해 사후 검증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해 보입니다. 교통정책의 수립과 계획에 대한 평가가 동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완성된 정답이 나오는 자판기 같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요와 입장을 가진 사람들 간에 공공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에 따른 편익의 배정과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일인 만큼, 대안적인 의견이 제시되고 토론이 이루어지는 민주적인 영역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사후에도 분석과 평가에서 놓치고 잘못한 부분을 찾아내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자료를 공개하고 활용의 편의를 제공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수포자인 입장에서 각종 함수와 적분식이 마구 출몰하는 책을 읽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만, 암 투병중에도 남겨진 귀한 시간을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을 조중래교수님과 그 메시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재로 사용한 자료를 부록으로 붙여가며 인터뷰를 정리하느라 애쓴 저자들의 노력을 생각하며 수포자의 일탈을 감행해 보았습니다. 이 일탈에 잠시 동행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글. 김종민
'서울로 뚜벅이 출퇴근하는 시흥시 은행동 동네 아저씨'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김종민님은 밥통 창립멤버로 밥통 감사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