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망대해 : 잊으면 망하리, 해결되길 기다리네
-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선박으로 한국의 폴라리스 쉬핑 해운회사에서 운항하던 배이다. 당시 선박에는 24명의 선원이 탐승했었으며, 침몰 사고 발생으로 22명의 선원(한국인 8명, 필리핀인 14명)은 탈출하지 못했다. 침몰 발생 예상시간은 브라질 시간 오전 11시 20분(한국시간 오후 11시 20분)이며 “배가 긴급하게 기울고 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기고 순식간에 침몰했다. 두 명의 생존자 진술에 따르면, 침몰 당시 조타실에 11명의 선원이 모여 있다고 한다.
스텔라데이지호는 1993년 유조선으로 만들어져 15년간 운항하였으나, 국제해사기구(IMO)의 단일선체 유조선 퇴출 정책으로 폐선하려던 선박이었다. 한국 해운회사인 폴라리스 쉬핑은 폐선해야 할 단일선체 유조선을 고철값에 구입해 중국에서 화물선으로 개조해 철광석 운반선으로 사용했다. 이는 2009년 이명박 정부는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20년으로 묶여있던 여객선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변경했으며, 이후 정부는 안전규정을 강화해 화객선 선령제한을 25년으로 낮추었으나 스텔라데이지호 같은 외향 화물선은 선령 제한이 없었던 이유로 가능했다. 세계적인 해양강국이라고 자처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선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업의 이윤 확대만을 염두에 둔 개조 화물선이 운항하도록 승인해준 것이다. 폴라리스 쉬핑은 개조 당시 선체의 모든 강판과 중요 부품을 교체했다고 밝혔지만, 스텔라데이지호는 개조 8년 만에 남대서양 바닷속으로 순식간에 침몰되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63빌딩보다 70m 더 높고, 축구장 세 개 정도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다. 이런 거대한 유조선을 개조한 화물선은 전세계 52척이 있고, 이 중 스텔라데이지호는 침몰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이후, 실종선원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침몰참사 발생 6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침몰원인을 밝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하고 2년이 지난 뒤에야 1차 심해수색을 진행했다. 이 1차 심해수색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실종자 가족들과 대책위의 수많은 노력을 다했던 결과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내에 선례가 없어 심해수색을 할 수 없다며 ‘국회에서 공론화 되면 검토해보겠다’고 했었다. 그때부터 실종선원 가족들은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국회에는 가본 적도 없던 가족들이 외교부,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심해수색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수많은 기자회견과 기자 간담회, 언론인터뷰를 하며 정부를 설득했다. 2017년 7월부터는 60-70대인 실종선원 부모님들이 모여 국민 서명운동을 벌였고, 2018년에는 길거리에서 받은 10만인 서명지를 청와대로 전달하였다. 그렇게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의 첫 심해수색이라는 결실을 이끌어 낸 것이다.
하지만 1차 심해수색은 어떤 결과도 가져오지 못했다. 침몰선체와 유해 1구를 발견했을 뿐, 침몰원인 규명도, 유해수습도 하지 않았다. 스텔라데이지호 항해기록저장장치를 수거했으나 복원에도 실패했다.
1차 심해수색 이후 그 해 7월, ‘스텔라데이지호 1차 심해수색 평가에 관한 여,야 5당 합동 공청회’를 열고 1차 심해수색이 미흡했으며 침몰 원인 규명과 유해 수습을 위한 2차 심해수색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20년 9월에는 국회에서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추진을 위한 국회 공청회’를 열고 여러 전문가들을 초청해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시 현존하는 과학적 기법과 장비를 활용하여 침몰 원인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고, 조타실에 있는 유해 수습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 경찰이 아닌, 민간 회사에서 근무하던 국민의 문제에 추가로 예산투입을 하면 향후 유사 사건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2차 심해수색 예산 편성을 반대했다. 그리고 침몰 참사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2차 심해수색의 예산 편성을 받지 못해 여전히 침몰의 원인도, 유해 수습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는 ‘문재인 정부 1호 민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일이었던 2017년 5월 10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실종선원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대통령에게 서한문을 전달했던 것이 청와대에 민원으로 접수되고 언론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를 ‘문재인 정부 1호 민원’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1호 민원은 임기 5년 내에 해결되지 않은 채,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대책위와 가족들의 요구는 달라지지 않는다. 2차 심해수색을 통한 명백한 침몰원인 규명, 그리고 실종자 유해 수습을 계속해서 요청할 것이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이 국가의 책임이므로 정부를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나서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문을 공표하기도 했다. 정부가 바뀌고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책임, 잃어버린 국민을 끝까지 찾아야 할 책임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는 성과주의의 그늘에서 탐욕에 눈이 먼 기업과 이들을 눈감아주었던 국가의 방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위연적으로 발생했던 분명한 사회적 참사다. 현재 스텔라데이지호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폴라리스 쉬핑 김완중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 7명을 업무상과실치사 및 업무상과실선박매몰죄로 기소하여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법정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침몰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기 위해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의 심판 또한 이어가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의 진실을 찾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이 일에 ‘고난함께’ 또한 끝까지 힘을 다할 것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의 가족들의 마음과 같이 이 참사의 진상규명을 밝히는 일, 선례를 남기는 일은 또다시 참사가 반복되어 같은 아픔을 겪는 국민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 끝까지 투쟁하며 나아갈 것이다.

글. 김지애
개신교 사회선교단체인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의 실무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를 비롯하여 10.29 이태원참사,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찾는 걸음에 함께하고 있다.
망망대해 : 잊으면 망하리, 해결되길 기다리네
-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선박으로 한국의 폴라리스 쉬핑 해운회사에서 운항하던 배이다. 당시 선박에는 24명의 선원이 탐승했었으며, 침몰 사고 발생으로 22명의 선원(한국인 8명, 필리핀인 14명)은 탈출하지 못했다. 침몰 발생 예상시간은 브라질 시간 오전 11시 20분(한국시간 오후 11시 20분)이며 “배가 긴급하게 기울고 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기고 순식간에 침몰했다. 두 명의 생존자 진술에 따르면, 침몰 당시 조타실에 11명의 선원이 모여 있다고 한다.
스텔라데이지호는 1993년 유조선으로 만들어져 15년간 운항하였으나, 국제해사기구(IMO)의 단일선체 유조선 퇴출 정책으로 폐선하려던 선박이었다. 한국 해운회사인 폴라리스 쉬핑은 폐선해야 할 단일선체 유조선을 고철값에 구입해 중국에서 화물선으로 개조해 철광석 운반선으로 사용했다. 이는 2009년 이명박 정부는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20년으로 묶여있던 여객선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변경했으며, 이후 정부는 안전규정을 강화해 화객선 선령제한을 25년으로 낮추었으나 스텔라데이지호 같은 외향 화물선은 선령 제한이 없었던 이유로 가능했다. 세계적인 해양강국이라고 자처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선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업의 이윤 확대만을 염두에 둔 개조 화물선이 운항하도록 승인해준 것이다. 폴라리스 쉬핑은 개조 당시 선체의 모든 강판과 중요 부품을 교체했다고 밝혔지만, 스텔라데이지호는 개조 8년 만에 남대서양 바닷속으로 순식간에 침몰되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63빌딩보다 70m 더 높고, 축구장 세 개 정도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다. 이런 거대한 유조선을 개조한 화물선은 전세계 52척이 있고, 이 중 스텔라데이지호는 침몰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이후, 실종선원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침몰참사 발생 6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침몰원인을 밝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하고 2년이 지난 뒤에야 1차 심해수색을 진행했다. 이 1차 심해수색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실종자 가족들과 대책위의 수많은 노력을 다했던 결과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내에 선례가 없어 심해수색을 할 수 없다며 ‘국회에서 공론화 되면 검토해보겠다’고 했었다. 그때부터 실종선원 가족들은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국회에는 가본 적도 없던 가족들이 외교부,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심해수색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수많은 기자회견과 기자 간담회, 언론인터뷰를 하며 정부를 설득했다. 2017년 7월부터는 60-70대인 실종선원 부모님들이 모여 국민 서명운동을 벌였고, 2018년에는 길거리에서 받은 10만인 서명지를 청와대로 전달하였다. 그렇게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의 첫 심해수색이라는 결실을 이끌어 낸 것이다.
하지만 1차 심해수색은 어떤 결과도 가져오지 못했다. 침몰선체와 유해 1구를 발견했을 뿐, 침몰원인 규명도, 유해수습도 하지 않았다. 스텔라데이지호 항해기록저장장치를 수거했으나 복원에도 실패했다.
1차 심해수색 이후 그 해 7월, ‘스텔라데이지호 1차 심해수색 평가에 관한 여,야 5당 합동 공청회’를 열고 1차 심해수색이 미흡했으며 침몰 원인 규명과 유해 수습을 위한 2차 심해수색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20년 9월에는 국회에서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추진을 위한 국회 공청회’를 열고 여러 전문가들을 초청해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시 현존하는 과학적 기법과 장비를 활용하여 침몰 원인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고, 조타실에 있는 유해 수습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 경찰이 아닌, 민간 회사에서 근무하던 국민의 문제에 추가로 예산투입을 하면 향후 유사 사건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2차 심해수색 예산 편성을 반대했다. 그리고 침몰 참사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2차 심해수색의 예산 편성을 받지 못해 여전히 침몰의 원인도, 유해 수습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는 ‘문재인 정부 1호 민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일이었던 2017년 5월 10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실종선원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대통령에게 서한문을 전달했던 것이 청와대에 민원으로 접수되고 언론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를 ‘문재인 정부 1호 민원’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1호 민원은 임기 5년 내에 해결되지 않은 채,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대책위와 가족들의 요구는 달라지지 않는다. 2차 심해수색을 통한 명백한 침몰원인 규명, 그리고 실종자 유해 수습을 계속해서 요청할 것이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이 국가의 책임이므로 정부를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나서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문을 공표하기도 했다. 정부가 바뀌고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책임, 잃어버린 국민을 끝까지 찾아야 할 책임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는 성과주의의 그늘에서 탐욕에 눈이 먼 기업과 이들을 눈감아주었던 국가의 방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위연적으로 발생했던 분명한 사회적 참사다. 현재 스텔라데이지호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폴라리스 쉬핑 김완중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 7명을 업무상과실치사 및 업무상과실선박매몰죄로 기소하여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법정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침몰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기 위해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의 심판 또한 이어가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의 진실을 찾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이 일에 ‘고난함께’ 또한 끝까지 힘을 다할 것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의 가족들의 마음과 같이 이 참사의 진상규명을 밝히는 일, 선례를 남기는 일은 또다시 참사가 반복되어 같은 아픔을 겪는 국민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 끝까지 투쟁하며 나아갈 것이다.
글. 김지애
개신교 사회선교단체인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의 실무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를 비롯하여 10.29 이태원참사,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찾는 걸음에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