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22.10 | 98호땅과 사람 | 토종을 잇고 살을 붙이는 일의 가치 /이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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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을 잇고 살을 붙이는 일의 가치

- 진천군여성농민회 이해자 님의 이야기



이해자 님은 충청북도 진천군의 농민이다. 20여년 전부터 여성농민회와 민주노동당을 활동을 해왔다.
지금은 수박, 단호박 농사와 자급을 위한 토종농사에 정성을 쏟고 있으며 7년차 돌봄노동자이기도 하다. 



농민운동을 결심하고 정략결혼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농산물 수입개방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 대학시절을 보냈어요. 

열일곱 번의 농활을 다녀올 정도로 농촌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최소한의 양심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농민운동을 결심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납득하지 못하셨어요. 가족의 지원은커녕 지지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고민을 했죠. 

그래서 제가 찾은 해법이 결혼이었어요. 91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선배에게 ‘농민운동을 할 전망을 가진 남자를 소개해 달라. 미팅보다 맞선을 보게 해 달라’며 부탁했어요. 그렇게 만난 남자와 충북 진천에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사랑보다 목적이 먼저인 정략결혼이었죠. (웃음)

무일푼에 옷 가방 하나 들고 와 자리 잡았으니 현실은 녹록치 않았어요. 당시 충북은 농민회 조직이 전혀 없던 곳이었고 고향이 아니기 때문에 더 그랬어요. 청년농부 지원정책 같은 것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시골인심 덕에 마을잔치로 결혼식을 올렸어요. 마을 사람들이 손수 음식을 준비해주시고 3박 4일 동안 결혼식을 치렀어요. 



농민이 되어 


농민운동의 일환으로 사람을 만나고 조직을 꾸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해 나갔어요. 하지만 아이 낳아 키우며 생활을 꾸리고 안정적으로 농사짓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았어요. 부모의 땅을 물려받지 못했고 비빌 언덕이 없으니 농촌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기가 어려웠어요. 사실 도시의 임금노동자보다 농촌에서 농민으로 살아남기가 더 어려워요. 이제껏 농지 한 평 없이 평생을 임대농으로 살아왔어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기서 떨려나지 않은 스스로가 장하다고 생각해요.

운동이라 하면 내가 속한 공동체(나라, 민족, 지역 등) 사람들과 어우러져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가치만 앞섰을 뿐 현실에서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했어요. 이념과 가치는 높은데 쫓기듯이 살았어요. 경제, 정치, 생활에서의 자주를 이루지 못한 채 가치 중심의 활동을 하다 보니 현실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운동하는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독특한 사람으로 보였을 거에요. (웃음)



내 식탁에서부터


농업으로 수익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농업의 수입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생계를 위한 농사에 ‘내 삶’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어요. 오로지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농사를 짓다보니 햇반 같은 편의점 음식이나 배달 음식을 먹으며 농사를 지었어요. 박봉에 시달리는 기간제 노동자 청년들이 편의점에서 혼술, 혼밥 하듯이 말이에요. 돈의 무게 때문에 나와 가족을 위해 밥할 시간이 일을 조금 더 하는 데 쓰여 버린 거죠.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서 깨달은 것이 일상의 소중함이었어요. 이제는 내가 먹는 것의 소중함을 크게 느끼죠. 팔기 위한 농사가 아닌 내 식탁을 위해 따로 농사를 지어요. 장을 직접 담기 위한 농사도 짓고요. 내 식탁에서부터 독립을 이뤄내는 것이 농민운동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전국여성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는 여성농민이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발품을 팔아 단체를 만들고 전국적으로 키워낸 자주적인 조직이에요. 전국농민회와 따로 또 같이 많은 것들을 이뤄냈어요. 종자 주권, 먹거리 주권, 여성농민의 권익 향상 같은 다양한 일들을 해왔고 지금도 해나가고 있어요. 예를 들면 토종종자 잇기, 학교 급식 개선, 농협의 복수조합원 제도 도입, 농민수당 재정 논의 같은 것이에요. 다른 어떤 농민단체보다 구체적으로 잘한다는 자긍심이 있어요. 

저를 포함해 거의 모든 농사꾼이 시장중심의 농사를 지어요. 그래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사실 그래도 먹고 살기 어렵죠. (웃음) 하지만 여성농민들의 손이 토종을 놓지 않았어요. 토종을 잇고 살을 붙이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는 잘 아실 거에요. 



토종, 아! 이 맛이야~


전여농에서 토종종자 사업을 시작한 지 7년 되었어요. 씨앗만 지키자고 했으면 잘 안 되었을 거에요. ‘아~ 이 맛이야, 정말 맛있어, 정말 좋구나!’ 하며 내가 느끼니까 저절로 적극성이 생겨났어요. 씨앗 받는 훈련이 되면서 때가 되면 나풀나풀 제 때 올라오는 토종 농산물을 제 때 수확해서 밥상에 올려보니 좋은 거죠. 

토종콩으로 담은 장은 맛이 달라요. 순두부, 두부를 만들어도 정말 맛있어요. 내가 맛있으니까 나눠 먹게 되고요.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저절로 되는 거죠. 씨앗을 소중하게 지키고 풍성하게 살을 붙이는 일을 여성농민이 해나가고 있어요. 그 기록이 책자로 나오기도 했어요.

진천군 여성농민회는 토종쌀 농사를 짓고 있어요. 쌀과 가래떡을 나누고 팔기도 해서 통일기금으로 적립해요. 언젠가 통일이 되면 북과 함께 종자교류 사업을 하고 싶어요. 또 구억배추를 농사지어 김장을 담고 있어요. 기금 마련 판매도 하고 직접 나누기도 해요. 김치, 두부, 떡, 토종쌀, 각종 농산물로 토종꾸러미를 만들어 투쟁하는 곳이나 장애인 시설에 보내요. 다른 단체가 하는 후원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가공식품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렇게 진심을 담은 이런 꾸러미는 처음이라며 놀라죠. 이제는 여성농민회하면 토종꾸러미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통일과 농사


우리나라 농촌인구가 전체 인구의 4~5%입니다. 그 정도의 비율로 국가 정책이 지원되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농촌, 농업, 농민의 현실은 암울합니다. 너무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다 보니 일제 강점기 같은 형태까지는 아니지만 식량 문제에 자기결정권이 없어요. 개방 압력 앞에서 국가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해요.

우리는 출구가 없는 섬나라인 셈이에요. 그래서 땅을 잇고 하늘을 잇는 통일로 가야 미래가 열린다고 생각해요. 자주적인 나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축이라 할 수 있는 농업을 저를 비롯한 우리 농민이 담당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있어요. 여러 가지 주권 중에 ‘적어도 쌀이라도 독립을 해야 하지 않나’하는 마음이 있어요.



마치며 

제가 농민으로, 농사꾼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꿈은 더 이상 꾸지 않아요. 이제는 내가 살고 있는 충청도 그리고 진천군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인 가치를 키우고 싶어요. 그 안에서 농민으로서 하나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을 합니다. 또 농업과 더불어 살만한 진천을 만들고 농업의 위상을 높이고 여성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식량주권을 지켜내는 일... 이런 건전한 가치의 대를 이어줄 건강한 후계 농민을 키워내고 싶어요.



    


이해자 님과 만나고 류승아가 정리하다.
류승아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기획집행위원, 《밥통》 편집위원이다.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물려줄 망가진 지구가 미안해 생태적인 삶을 살고자 텃밭농부가 되었다.
세제 없이 설거지 할 수 있는 마수세미를 떠서 세상에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