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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 | 밥통 115호

22.07 | 95호현장 돋보기 | 노량진수산시장, 지독한 폭력을 이겨낸 상인들의 ‘밥심’ /이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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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수산시장, 지독한 폭력을 이겨낸 상인들의 ‘밥심’ 




2020년 6월, 수협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구 노량진수산시장을 철거한다. 24시간 영업을 멈추지 않았던 수산시장의 불이 처음으로 꺼졌다. 굽이진 골목에 자리잡아 서울시민들의 운치있는 회식 장소가 되어주었던 초장집들도, 패류, 활어, 선어 등 대한민국 모든 수산물이 한자리에 모여 수도권에 시민들에게 질좋은 해산물을 제공하던 가판대와 활어가 들어있는 수조도 모두 철거당했다. 그 가판대를 생계삼아 평생 사업을 일군 상인들은 바닷물에 주름진 손으로 용역 깡패를 막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집약적이고 거대한 폭력은 상인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2008년, 수협은 현대화사업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개발사업을 추진한다. 시장을 일궈온 상인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오직 수협의 개발이익만을 고려한 개발사업으로 구시장을 철거한 자리에는 대규모 카지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의견수렴 조차 없이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사업, 반대를 무릅쓰고 구시장 옆에 완성된 신시장에서는 기존 보다 높은 월세로 월세 장사, 주차장 사업을 펼쳤다. 구시장에서 장사하고 있는 상인들을 전부 수용할 수 있는 안은 애초에 준비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상인들을 갈라치기하고 배제할 요량으로 오직 ‘돈’만 바라보고 진행한 개발이다. 투쟁을 포기하고 신시장에 입주한 상인들은 구시장보다 더 작은 공간에서, 더 높은 월세를 내고 장사해야 했다. 수산물값이 높아지는 것은 인지상정. 모든 부담은 세입자인 상인들과 소비자인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명도집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상인들을 격렬하게 저항했다. 2017년 1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명도집행에 고령의 상인들은 온몸으로 맞섰다. 무심한 구급차가 수차례 오간다. 관광버스 몇대가 들어와 안내했더니 승객이 모두 용역이었던 적도 있었다. 수협은 집요하게 상인들을 괴롭혔다. 협박과 물리적 폭력, 성희롱과 손배가압류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다. 포크레인, 지게차, 대형트럭이 동원되었다. 현장은 전쟁터였다. 시민들이 드나들던 통로로는 용역이 들이닥친다. 사방이 도로인 시장 특성 상 용역에 둘러싸이면 그야말로 고립된 섬. 도심 한복판은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었고 17년 이후 철거될 때까지 철거 현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반복된다. 


철거 이후 노량진역 1번 출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상인들과 매주 예배를 드렸다. 평생을 장사하며 회며 찌개며 맛깔나게 내던 금손들이 농성장에 모여있으니 몇 명의 연대인들이 찾아오던 너끈히 밥을 먹여 돌려보냈다. 예배가 끝나면 늘 한상 푸짐하게 차려진 연대의 밥상이 펼쳐졌다. 연대하는 종교인들의 기도 제목은 한결같다. 저 영민한 손길들로 생선을 고르고, 회를 뜨고, 매운탕을 끓여 다시 손님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육교 위 농성장의 일상에서도 폭력은 반복된다. 구시장을 철거한 수협은 이 끈질긴 상인들을 눈엣가시로 여겨 모든 흔적을 지우고 싶어했다. 한겨울에 물대포까지 동원해 뿌려댄다. 천막을 칼로 찢는다. 소화기를 뿌린다. 집요하고 지독했다. 우리는 분진 가득한 농성장에서, 연대하는 이들 밥은 굶길 수 없다며 고단한 몸을 이끌고 또 밥을 준비하는 상인들의 분주한 모습에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삶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이 지독한 폭력을 이겨내는 힘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던 2021년 11월 5일, 강제집행 폭력의 트라우마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던 상인 ‘나세균’ 님이 숨을 거둔다. 애써 울지 않고, 애써 참아내던 마음들이 무너졌다. 상인들은 영정을 들고 시청 앞으로 향했다. 공공도매시장 노량진수산시장의 ‘개설자’인 서울시가 지금껏 외면하고 나몰라라했던 현실 속에 결국 사람이 죽었다. 농성장의 막내였던 그이를 추모하며 상인들은 그렇게 장례투쟁을 시작했다. 이 모든 폭력의 값은 대체 어떻게 치루어야 하는가? 이 성실한 상인들이 길가에서 보낸 7년의 시간은 대체 어떻게 보상되어야 하는가? 잘못된 현대화사업과, 시장을 외주 맡겨 나몰라라 하는 공공의 책임은 대체! 


상인들은 지금 잠실역 인근 수협중앙회 본사 앞에서 농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수십억 손배가압류에 맞서는 중이다. 긴 시간이었고, 거대한 폭력이었지만 여전히 굴하지 않았다. 나세균 열사의 영정은 수협 앞 농성장에서도 살뜰한 보살핌 속에 꿋꿋이 서있다. 지난 7년 싸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함이며 억울한 죽음 앞에 책임을 묻고 더 나은 시장을 만들기 위한 투쟁은 오늘도 이어진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매월 첫째주 월요일 오후, 상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식사시간이 아닌데도 꼭 뭘 그렇게 준비하신다.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려 하면 그새 한상을 차려 연대하는 이들을 앉혀 한 술이라도 먹어야 한다. 그 뜨거운 마음, 누군가를 먹이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농성장 밥솥에서 한무더기 끓고 있다.


이종건

옥바라지선교센터 사무국장.
상인들이 농성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연대하여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