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21.09 | 85호땅과 사람 | 행복을 향한 한걸음, 도시텃밭 /김영자

조회수 655


행복을 향한 한걸음, 도시텃밭


산과 들과 바다가 어우러진 변산반도에 살고있는 김영자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직장을 다니다 2000년도에 그만두고 이곳으로 내려와서 농사를 배웠어요. 그러다 유기농업을 하고 있던 청년과 결혼하였습니다. 


오두막이지만 스스로 지은 집에서 아이 넷을 낳아 키우며 살고 있어요. 닭도 기르고 여러 가지 곡식과 채소, 과일나무를 키우며 최대한 자급하려 해요.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농사를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작한 자연재배가 20년이 되어갑니다. 퇴비를 자급하고 되도록이면 토종씨앗을 심고 풀을 베어서 덮어주는 방식으로 자연에 더 닮아가려 합니다.


이 글을 쓰자니 도시에 살 때를 떠올려보게 됩니다.


1995년에 농촌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서 우선 주말농장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분양받아 여러 가지 채소를 심었어요. 퇴근하고 버스로 50분 달려가서 1시간 일하고 노을이 붉게 지는 서쪽하늘이 어둑해져서야 겨우 흙을 털고 수확물을 한아름 안고 자취방으로 돌아왔어요. 그 작은 10평 밭에서 얻는 마음의 평화가 고단했던 20대의 시간을 훌훌 털어내 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예 귀농학교에 등록해서 수업을 듣고 전국의 선배 귀농인들을 찾아다니며 조언과 도움을 받았어요. 귀농하고 결혼해 처음에는 생협을 통해 유기농산물을 판매했어요. 그러다 자연농을 하면서부터는 저절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며 직거래를 하게 되었어요. 유통도 자립을 한 셈이지요. 암환자나 몸이 아프신 분들이 인연 따라 자연재배 농산물을 찾아오시지요. 직거래니까 농산물 구입하시는 분의 몸 상태에 따라 필요한 걸 세심하게 살펴 드릴 수 있어요.


도시에 살 때는 왠지 모르게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끝없이 이어졌어요. 그 시절 저는 시들시들하게 살았습니다. 농사를 하며 사는 지금도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건 아니지만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 된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자두가 좋으면 자두나무 심고 호두가 좋으면 호두나무 심고 달걀이 좋으면 닭을 키우고 장을 담고 싶으면 콩을 심어 메주 끓여 장을 담고... 무엇이든 삶에 필요한 의미 있는 것들을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촌살이의 가장 큰 매력이지요. 





둘째아이 영어교과서에 러시아 사람들의 주말농장 이야기가 있어요. 주말에 작은 별장과 텃밭이 있는 '다차'라는 곳에 가서 여러 가지 채소를 키워 수확물을 가지고 도시로 돌아가는 이야기인데 아이와 함께 공부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러시아 타이가 숲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나스타시아라는 여성에 대한 책 10권을 읽고 나서 참 좋았어요. 


도시의 삶은 호흡하는 것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고단한 순간들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주말이 되면 변산반도에는 관광객이 구름떼처럼 차를 몰고 와요. 사람들은 오랜만에 나서는 휴가를 편리하게 보내려고 많은 음식쓰레기와 일회용품, 플라스틱을 남겨두고 도시로 돌아갑니다. 지역경제가 외부관광객에 의지해 꾸려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좀 더 지속가능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적어도 그 쓰레기더미들이 어디로 가서 어찌 처리되는지를 생각하고 여행을 준비하시면 좋겠어요. 


제안 하나 드려요.


주말에 소중한 시간을 일회적인 관광지로 여행하는 것보다 가까운 거리에 텃밭을 구해 여러 가지 토종씨앗을 심어 최대한 자급하고 생명이 자라는 모습도 보고 생계비도 절약하면 어떨까요. 쿠바처럼 우리나라도 국가 차원에서 도시텃밭 농부들에게는 유기질 비료와 소규모 농기구를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자그마한 장터를 마련해 잉여농산물을 서로 바꾸기도 하고 사고 팔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아직 도시에 살았더라면 아마도 그렇게 지내고 있었을 것 같아요. 도시텃밭 농부들이 농사하기 어려운 작물을 전업농부들이 심어서 공급한다면 서로서로 좋겠지요. 


지금 저는 변산반도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마다 한두 가지 늘려가며 그럭저럭 행복하게 지냅니다. 여러분들도 조금 더 행복한 삶을 향해 한걸음 떼어보실래요.




김영자 농부

변산 신비원에서 남편 전세철과 20년째 자연순환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아름다운 변산에서 네 자녀와 함께 자연과 교감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