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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 | 밥통 115호

22.11 | 99호밥통 칼럼 | ‘애도’는 무엇으로 하는가 /한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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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무엇으로 하는가



그 길은 나도 가본 길이다. 인도 정통 커리 맛을 보여주겠다던 친구가 이끌던 길. 이태원 해밀톤 호텔 옆 4m 너비의 비좁은 경사로. 바로 그 길이다. 

 

2022년 10월 29일 밤. 핼러윈 축제를 맞아 모여든 인파 속에서 이 골목으로 몰린 사람들이 참사를 당했다. 156명이 죽었고 151명이 다쳤다고 한다(2일 상황). 

사람이 선 채로 사람에게 눌려 죽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렇게 죽은 사람이 45명이나 된다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그래서 더 끔찍하다.


생존에 대한 보고

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이 날벼락 소식을 들었다. 우리집에 살고 있는 20대 사람의 생존을 묻는 전화가 여기저기서 왔다. 

보기 괴롭지만 안 볼 수도 없는 보도를 보고 있자니, ‘수습과 애도를 위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후속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가 국가 애도 기간이라고 한다. 이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말하는 ‘애도를 위한 시간’이란 과연 무엇을 하기 위한 시간일까?  꼼수를 부릴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인가 제풀에 꺾일 때까지 시간을 끌어보자는 건가?

저들은 ‘애도’ 라는 걸 하고는 있는가? 

저들이 유예하고 있는 것은 ‘후속 대책’이 아니라, 처참하게 죽어간 망자에 대한 ‘애도’이다.   

 

사고 현장인 이태원역에는 추모의 국화가 쌓이고, 인근 상가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문구와 함께 휴업 사실을 적은 안내문이 붙었다. 이 와중에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회피성 발언에 이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곳으로 경찰 경비병력이 분산된 측면도 있었다”고 책임 떠넘기기 식의 말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남의 나라 종교 행사에 뭐한다고 들떠서 난리냐며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에 대한 비난도 비난을 받고 있다.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도 고등학생이 뭐하러 배를 타고 제주도까지 수학여행을 갔냐는 무개념 망언이 있었다. 

참사 이틀이 지나서야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한 내용이 알려졌다. 사고 주변에서 11건, ‘압사’라는 단어가 9번 나오고, 그 좁은 길을 일방통행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간절한 외침이 있었고, 장난전화 아니라고, 동영상을 보낼 방법을 묻는 신고도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고 신고 내용대로 참사는 일어났다. 세월호 이야기를 또 안 할 수 없다. 그 때도 우리는 사람 탄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번 참사에 세월호 유가족은 성명서를 통해 "행여라도 이 참사의 책임, 혹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당일 이태원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 돌리거나 그런 의도로 이해될 수 있는 말이나 글이 퍼지지 않도록 모두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경험에서 얻어진 마음 아픈 우려다. 

재난의 수습 과정에서 희생자와 부상자 실종자에 대해 신속하게 파악하는 일, 가족을 비롯한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 장례를 치를 가족에 대한 인간적인 소통과 예우, 이 사태로 인해 고통 받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지원 등등과 같은 일들이, 피해자와 가족들의 마음 덜 다치게 무사히 치러져야 한다.


유예된 ‘애도’의 정체는? 

이런 사회적 대참사를 겪고나서야 하는 질문들이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적 참사의 발생 원인을 알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질문은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반복되는 참사는 혹시, 우리가 애도에서 꼭 해야 할 무언가가 빠진 것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는 유예된 ‘애도’를 만나고 또 그렇게 보낸 것은 아닐까?  

애도는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29일에 지하철 6호선을 탔던 지인이 전한 말. 

“그 코스프렌가 하는 이상한 복장을 한 애들이 우르르 타더니 또 우르르 내리는 거야. 아주 신들이 나 보였어.”

그들은 각자의 삶의 지점에서 무언가를 하다가 핼로윈 축제에 참여할 계획을 세웠고 나름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해서 그곳을 갔을 터, 분명 설렜을 터.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그들 중 일부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일까?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 중 <앨리펀트>라는 작품이 있다. 1999년 4월, 미국 콜럼바인의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학생들의 일상이 무심하고 건조하게 담아낸다. 하늘은 맑고 각자의 일상으로 등교하는 학생들, 그 속에 총과 폭탄이 든 가방을 들고 가는 두 남자 학생, 너희들 뭐하는 거냐고 묻는 노란 옷 학생, 죽기 싫으면 꺼지라고 답하는 두 남자 학생, 뭔가 위기를 감지한 듯 사람들에게 학교 건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노란 옷 남자 학생. 다시 하늘은 맑고, 일상은 계속되고 사건은 일어난다.

이 영화는 사건의 조짐을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나가 전의 여러 사건의 조각들을 평면 위에 흩어놓을 뿐이다.


지하철 6호선 안의 그이들을 다시 생각한다. 자신들에게 모아지는 눈길의 여러 선들을 중에도 사건의 원인은 있을 터였다. 신고를 묵살한 경찰들의 행동에도 백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우리 모두는 그것을 몰랐다기보다 그에 대한 판단 자체를 묻어두거나 유예해 둔 것은 아닐까.


이 영화의 제목이 <앨리펀트>인 이유는 ‘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영어 표현과 연관된다. 영어 못하는 내가 직역하면 ‘방 안의 코끼리’인데 다루기 껄끄러운 문제를 말할 때 쓰인다고 한다. 

아기코끼리를 방안에 들일 때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틈에 자라난 코끼리는 가구를 부수는 등 문제를 일으킨다. 코끼리를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하여 사람들은 코끼리로 인한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코끼리를 밖으로 끌어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코끼리를 끌어내고 나면 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생존자’-‘재난피해 유보자’의 애도, 타자화 하지 않기 

참사는 일어났고,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언제 어느 때인가 또 일어날 수 있다. 살아남은 ‘생존자’ 중에 누군가는 또 ‘희생자’가 될 것인 이 마당에, ‘피해 유보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애도는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제1의무로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관련 법령도 실천적이어야 하고, 이 법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더하여 꼭 필요한 것, 우리의 애도에 반드시 담겨져야 할 그 무엇이 있다. 


“왜 하필 나냐?”는 질문은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말처럼 의미 없다. 

나도 자식이 있기에 그들의 참사가 슬픈 게 아니라,

나도 그렇게 죽을 수 있기에 참사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은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어느 사회에서든 피해-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여성도, 장애인도, 돈이 없는 사람도, 성소수자도, 나이 어린 사람도, 나이 많은 사람도,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실업자도, 말빨이 없는 사람도,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  어느 누구도 피해-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일상에 끼어있는 치석을 외면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모든 피해자들을 타자화하지 않는 것, 

시간을 다시 돌리지 않더라도, 6호선 지하철을 탄 그이들이 핼로윈 축제를 신나게 즐기고 모두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이후 어느 때인가의 내가 기억 속의 커리를 먹겠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 길을 걷는 ‘그 때’가 있다면, 그 때와 지금 이 현실과의 차이는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또 알려고 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 여기에 더하여 우리 시각에 사각지대가 있음을 인식하고 함께하려는 의지가 없는 한, 우리의 함량 미달 애도는 헛바퀴를 돌며, 애도빨 없는 애도로 남지 않을까.  


삼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글. 한광주

웹진 《밥통》 편집위원장.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과 함께 ‘다른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권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