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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 | 78호여기 사람이 있다 | 연대의 힘으로 싸워 이길 겁니다! -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LG 청소노동자 박소영 분회장 /한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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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사람이 있다 ]


연대의 힘으로 싸워 이길 겁니다!

-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LG 청소노동자 박소영 분회장

한광주(웹진《밥통》편집장)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조합원 35명은 2021년 새해를 추위와 주림으로 맞이했다.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집단해고를 통보한 LG에 맞서 로비에서 노숙농성을 해오던 조합원들은 대오를 흐트러트리지 않았고, 이에 LG는 출입을 통제하여 식사반입을 막고, 난방용 전기를 끊는 등 폭력적인 방법으로 조합원들을 압박했다. 

이 싸움을 이끌고 있는 박소영 분회장을 파업 41일차인 1월 25일에 농성 천막에서 만났다.  


이러고도 LG가 세계적인 기업이라고?

“엘지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건물을 반짝반짝하게 해 준 건 저희 청소노동자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 다 하며 청소했습니다. 청소노동자를 이렇게 처참하게 짓밟고서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청소노동자도 LG의 고객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마이크를 잡은 박소영 분회장의 발언은 차가운 공기를 파고드는 울림이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보수 중의 보수’였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박소영 분회장은 두 해를 넘기는  싸움을 해오면서, 이제는 집에서도 ‘파업가’ ‘철의 노동자’ 등의 민중가요를 입에 담아돌리는 투사가 되었다. 우리 사회의 모순, 악덕 자본에 저항하는 싸움이 일상이 되자 새롭게 열리는 세상을 보았다고 한다. 


지난 해 연말인 12월 31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35명이 해고되었다. 용역회사가 바뀌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청소 상태가 미흡했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에 불과할 뿐, 정적 사측이 탐탁치 않은 것은 청소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이다. 노조활동은 노동자의 기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LG는 온갖 비열한 방법으로 노조 와해를 시도해왔다. 그러다 급기야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해고를 통보한 건 용역회사 지수INC인데 왜 LG이야고 묻는 이가 있다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지수INC를 둘러싼 LG 지배구조를 또 지루하게 말해야 한다.  

2009년에 설립된 지수INC는 위생관리용역업, 용역경비업(시설경비업), 건축물시설유지관리업, 근로자파견업, 특수경비업 등을 하는 법인으로, 구자경 전회장의 딸이자 구광모 회장의 고모인 구훤미씨와 구미정씨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 LG그룹이 자회사인 S&I에 LG그룹의 건물, 공장 등의 자산을 관리하는 용역을 주고 S&I는 다시 지수INC에 도급을 주는 모양인데 이 역시 LG 일가 소유의 회사인 것이다.  



“내가 배운 건 없어도 청소 경력이 12년이에요. 우리가 볼 때 지수INC는 하는 일도 없을 뿐더러 뭐하나 마음대로 결정하는 게 없어요. 비품 하나를 청구해도 S&I가 결정해야 한다고 했어요. 청소 관리도 LG가 봄가을로 한번씩, S&I가 수시로 하는데 지수INC는 자체적인 검열은 없었어요. 사무실 번호도 안 가르쳐 주고 필요한 연락은 개인 휴대폰으로만 했어요. 서류를 뗄 게 있어서 용역 사무실을 찾아가도 건물 1층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가 직원이 가져다 주더라고요.”


정년이 없다는 말에 못볼 꼴 다 보며 일했는데 

올해로 건물 청소 경력 12년차가 되는 박소영 분회장이 LG트윈타워 청소일을 시작한 것은 5년 전, 정년이 없다는 조건 하나 보고 지수INC에 입사했다.

“들어올 때 내가 분명히 물었어요. 여기는 정년이 없냐고. 당시 담당자가 그러더라구요. 관리자가 봤을 때 저 사람은 일할 만큼 건강하다 싶으면 하는 거라고, 70세가 넘어도 일하는 사람도 있다고요. 그래서 환갑이 넘은 나이에 이리로 왔어요.”

그 말을 믿고 LG트윈타워 청소를 시작했고, 온갖 ‘부당함’과 ‘배알이 꼴리는 꼴’을 다 보면서 묵묵히 일을 하며 5년 5개월을 보냈다. 그이에게 필요한 것은 노년을 살아낼 수 있는 일자리였다.


LG트윈타워에서 청소작업중인 박소영 분회장. 그이가 바라는 것은 LG트윈타워에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고용승계’를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박소영 분회장은 베이비부머 세대이자 비빌 언덕 없는 낀세대에 속한다. 젊었을 때부터 우유대리점, 문구점, 슈퍼 등을 운영하면서 쉼 없이 일해 왔다. 우유회사의 횡포로 대리점을 접은 후에도 우유배달과 청소를 함께 하기도 하고 그 사이 틈나는 시간에 고시텔 청소를 하는 등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러나 노후보장은커녕 아직도 일손을 놓을 처지가 아닌 터라 일을 해야 했다. 

이 사회에서 ‘퇴직’이라는 말과 ‘은퇴’라는 말이 일치하지 않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박소영 분회장 연배의 사람들에게 ‘정년’ 운운하며 일자리에는 인색하면서 제대로 된 보장도 없어, 내가 벌지 않으면 살기 힘든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60대의 나이에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 나가라 할지 모르는 ‘고용불안’을 안고 사는 일이다. 

       

“60세 이상은 자른다더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어요. 정년은 없다고 했는데 65세가 정년이라고 하고, 광화문 LG빌딩은 벌써 2년 전에 60세 이상은 잘렸다도 하고요.”

어느 날 갑자기 나온 ‘정년’이라는 말에 박소영 님은 불안했다. 50대만 되어도 갈 곳을 찾을 수 있지만 65세가 된 이 시점에서 ‘정년’이라는 말은 생계를 위한 수단을 잃는 것, 생존이 힘든 상황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공원에 나갔다가 한국거래소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를 만났어요. 심란한 마음에 거기는 정년이 어찌되냐 물으니, 전에는 65세인데 노조를 만들고 나서 70세까지 일을 한다는 거에요.”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노조를 만들려면 어찌해야 하느냐 물으니 민주노총 공공운수 조직부장이라는 사람의 명함을 줬다. 당장 전화를 해서 만나자는 말을 들었다. 

시작이었다. 


노조를 만들자, 총대는 내가 멘다. 

다음 날 새벽 청소를 마친 아침, 식당에서 앞줄에 서있는 동료에게 어젯밤부터 입에 돌던 말을 꺼냈다. 노조를 만들면 좋다는데 우리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유, 언니. 노조 만들면 좋지.’라고 시작된 말은, 저기 어딘가도 노조 만들고 나서 근무여건이 좋아졌다는 거였다. 누가 총대만 메준다면 자신은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마음이 모은 동료 네 명과 명함 속의 조직부장을 만나러 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한 사람이 안 가겠다고 했다. LG 라는 큰 회사를 상대로 우리가 어떻게 싸우겠냐, 그러다 잘리면 어쩌냐는 거였다. 나머지 사람도 주춤했다. 노조를 하든 안 하든 일단 같이 가보자고 했다. 같이 가는 거 가지고 자르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만난 자리에서 박소영 님과 동료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이 어떤 여건에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일을 하는지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 아무도 물어주지도 않고 궁금해하지 않았던 일들. 정년만 보장된다면 무슨 일이든 참고 하겠다는 다짐으로 속이 문드러져가던 수모. 부당한 노동에 사람 대접 안 하던 것에 더하여 ‘벼룩의 간’을 내어 맛있게 처먹던 그들의 경악할 만한 행태를.   


“나는 어차피 내년이면 65세이니 잘려도 내가 잘리겠다 했어요. 일단 내가 총대를 메겠다고 했지요. 그런 각오라면 한번 해보자며 부장님이 노조 가입신청서를 줬어요.”    


‘벼룩의 간’을 내어 맛있게 처먹던 그들 

지금사 되돌아 보면 당시에 청소노동자의 정년을 보장해주는 게 LG로서는 더 나을 뻔했다. 그랬다면 LG청소노동자들은 온갖 작태와 수모를 지금까지 참고 또 참았을 터, 언감생심 대기업 LG를 상대로 싸움의 깃발을 들지도 않았을 터였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말은 딱 여기에 쓸 일이었다. 최저임금에 수당까지 합해도 월 200만 원을 받아보지 못한 청소노동자에게 만 원씩 이만 원씩 돈을 뜯어갔다면 사람들이 믿을까. 청소노동자에게 이만원씩 걷어서 직원들 먹을 과일사다가 먹게끔 바치라는 말을 했다면 실화라 믿을까. 많은 직원들 앞에서 조장 수당을 이유도 없이 당장 내놓으라는 으름장에, 내일 주겠다는 말도 안 먹혀 현금 가진 동료들에게 꿔서 바치는 청소노동자가 있다면 과연, 사람들은, 믿을까?


“각층 화장실마다 가글을 설치해 놓았어요. 가글 회사와 S&I가 계약을 맺었는데 그 관리를 우리 청소노동자더러 하라는 거지요. 1.5리터 가글 여섯 통을 지하에부터 들고 와야 해요. 이건  청소 외의 일이지요. 처음에는 관리자가 이 일의 대가로 이만원씩을 봉투에서 넣어 주었어요. 헌데 어느 날부턴가 돈을 안 줘요. 가글 회사가 바뀌어서 돈을 못 준대요. 그게 말이 되나요? 청소노동자에게 가야 할 돈을 회사가 가로챈 거지요.”


층마다 네 대나 있는 정수기와 각 층 카페에 설치된 커피머신 건도 그렇다. S&I가 정수기 회사 그리고 커피회사와 계약을 했으니 당연 관리도 그 업체에서 해야 하는 일임에도 청소노동자에게 무임금으로 시켰다. 이는 청소 영역이 아닐뿐더러 계약에 포함된 사항도 아니다. 청소노동자의 노동 착취로 중간에서 사라진 관리비는 도대체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인지는 뻔한 일이다. 노조를 만든 이후에 그 부당함을 말하며 커피머신 관리를 거부했더니 회사는 이를 태업으로 간주해서 2만 얼마, 3만 얼마씩을 떼어갔다.


‘짝꿍층’이라는 말이 있다. 청소노동자 한 사람이 두 개의 층을 담당하는데 어떤 충에 청소할 사람이 비면 이웃한 층의 청소노동자가 한층씩 맡아서 해야 한다. 문제는 이 짝꿍층 청소에는 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청소노동자 한 명에 대한 임금 착취이다.  


또 있다. 이른바 시간꺽기. 

“다른 데 일할 때는 아침 식사 시간을 한 시간 주거든요. 근데 한 시간 반을 쉬게 해주는 거에요. 여기는 참 좋네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 시간을 모아 일요일에 격주로 일을 시키는 거에요. 그것도 식당 왁스 작업을.”


LG트윈빌딩은 동관과 서관에 각각 식당이 있는데 전직원이 식사하는 곳이라 두 동 식당을 합하면 3,000여 평이 된다. 이 식당의 왁스 작업을 청소노동자더러 하라고 했다. 이 작업은 전문 장비와 약품을 쓰는 일이라 외주로나 주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장비도 없이 하자니 독한 약품에 눈이 시리고 따가운 것은 예사. 통으로 물을 끌어다가 마포걸레로 약품을 대여섯 번을 닦아내는데, 장화조차 지급되지 않아 평소 신는 신발에 쇠수세미를 끼워 신고 일을 했다, 그러다 미끄러져 다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데 이럴 때 산재는커녕 제 돈들여 병원에 다녀와도 괜찮은지 묻는 일조차 없었다고 한다. 왁스 청소를 하는 날은 쉬는 시간도 점심시간도 없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아무리 싼 것도 평단 15000원, 비싼 데는 18000원씩 하더라고요. 못 들어도 천만원은 넘게 드는 이 일은 우리 청소노동자들이 할 일이 아니에요. 여태 청소일을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 해봐요.”  

  

이 외에도 최저임금 적용에도 사측은 ‘벼룩의 간’을 찾아내 먹었다.  

“최저 임금이 올라도 1월 1일부터 소급해 적용하는 게 아니라 4월부터 적용해요, 지난 석 달의 임금 상승분은 자기네가 떼어 먹는 거지요. 구씨 일가에 60억씩 바치려니 우리들을 쥐어짜애 할밖에요.”

한 보도에 따르면 지수INC의 주주인 구훤미와 구미정의 2019년 배당금은 60억 원에 이른다.  설립 1년 반 만인 2011년부터 배당금을 받아갔는데 지난 9년 간 이 두 사람이 챙겨간 배당금은 총 207억2000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벼룩의 간을 내어 처먹으니 맛나드냐?’고 묻고 싶은 대목이다.  


일도 못하는 씨발년들이?

“일하다가 허리 좀 편다고 휴게실에 가면 중간 관리자가 문 잠가 놓고 육두문자를 써가며 욕을 해요. 왜 거기 들어가려 하냐고, 일할 시간도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딜 들어가냐고.”

도대체 그 육두문자가 뭔지 물었다. 어렵겠지만 그대로 말해달라 요청했다. 

차마 글로 옮겨적기 손 떨리는 말, 그러나 쓰련다. 

씨발년들, 청소도 못하는 년들, 좆같은 년들, 

전해듣는 것만으로 피가 거꾸로 솟을 마당에 박소영 분화장은 남은 한 마디를 보탠다. 

“그런 욕하는 건 보통이에요. 나중에 우리가 노조 만든다니까 하니가 그랬어요. 늙은 년들이 별걸 다 한다고.”


박소영 님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새벽에 나서려니 교통편도 쉽지 않아 서너 번을 갈아타고 5시 반이면 회사에 출근한다.      

옷 갈아입고 걸레 준비해서 가지고 32층으로 올라가면 이 때부터 물 한 잔 편히 마실 시간도 공간도 없다. 일하다가 땀이 차면 옷 갈아 갈아입을 공간도 마땅치 않다. 

“단자함이 있어요. 좁기도 하고 천정에서 석면가루 떨어져서 어떤 사람들은 우산을 받쳐놓기도 하는 공간이에요. 여기서 옷을 갈아입어요. 여기서 옷을 갈아입는 줄 뻔히 알면서도 조사 나온 직원은 문을 노크도 없이 확확 열어요. 왜 문여냐고 하면 왜 작업시간에 옷을 갈아입느냐는 거에요. 머리 좀 이렇게 만지면 그러고 카페 갈 거냐고 비아냥 거리 일쑤에요.”


    

겉은 말끔하지만 문 열고 들어가면 석면가루 날리는 천정에 비좁은 담자함. 이곳에서 LG 청소노동자들은 옷을 갈아입는다. 종이박스 위에 갖다 놓은 방석 하나가 물 한잔 마실 수 있는 유일한 휴식 도구이지만 이마저 눈치를 봐야 한다.


조사 나온 직원은 커피 한잔 마시는 일에도 트집을 잡았다. 

“일하는 시간에 왜 커피를 마시냐는 거에요. 물 한잔도 못 마시냐고 물으니 물은 괜찮은데 커피는 안 된대요. 물은 금방 마시는데 커피는 마시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자기가 직접 먹어보면서 물 먹는 시간과 뜨거운 커피 마시는 시간하고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 그러는 거에요.”

일부러 껌을 붙여놓고 떼나 안 떼나 보는 등 ‘청소감독’을 빙자한 억압은 청소노동자이 정당한 노동을 부정하고 위축시켰다.       


계모임도 못하게 하는데 노조를 만들겠어?

노조가입서를 가지고 와서 친한 사람들에게 먼저 보여주니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이거 힘들겠다.”

“계모임도 못하게 하는데 노조를 어떻게 만들겠어?”


박소영 님은 일단 시작해 보자고 했다. 어차피 총대 멘 사람만 잘리지 다른 사람은 안 잘릴 거라고,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 터이니 함께 해보자고 하니 한두 사람씩 가입서를 받아들었다.  

네 사람이 여덟 사람이 되고, 스물아홉 사람이 되었다.  

물론 순조롭지는 않았다. ‘빨갱이나 하는 짓’이라며 소장에게 일러바치는 조합원도 있었다.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그 바람에 ‘너무 무섭다’며 가입서를 도로 달라는 조합원도 있었다. ‘일단 칼을 빼들었으면 호박이라도 잘라 봐야지, 노조 만들기가 그리 쉬우면 개나 소나 다 만들었지 않겠느냐’며 조합원을 독려했다. 회사의 방해 공작은 이미 시작되었고, 야간조와의 만남은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며칠 사이에 37명의 조합원이 모여 2019년 10월, 휴게실에 빙 둘러앉아 첫 총회를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 서울지부 엘지분회 창립총회. 

회사 휴게실에서 누가 이런 거 하랬냐고 노발대발하던 관리자는 ‘그럼 로비에서 할까요?’라는 손승환 조직부장의 말에 꼬리를 내렸다. 

그 날 이후 사측의 방해 작전은 생각보다 치밀하고 비열했다. 

“한 사람씩 부르더라고요. 총회 때 직원의 호통에 바들바들 떨던 내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으나, 이 사람들은 아무 죄가 없다 내가 선동했고 내가 하자고 했다고, 이 사람들은 그냥 내 말을 듣고 한 거라고, 나한테 뭐라 하고 청소노동자들은 빨리 올려보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예, 알겠습니다’ 하면서 나가는 거에요. 그것도 뒷걸음질을 쳐가면서. ‘아니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순한 양이 되었지? 노조가 겁나긴 한가보다’ 생각하니 자신감이 솟더라고요. 노조는 어쩔 수없이 만들게 되어 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나가겠다고 조합원들을 안심시켰어요.” 

그러는 사이 조합원 수는 점점 늘어나 57명이 되었다. 

휴게실에 모인 조합원들. 민주노총 공공운수 서울지부 LG분회 창립총회도 이 휴게실에 둘러앉아서 했다.


10원 올려주랴? 60원 올려주랴?

며칠 후에 소장이 사표를 내고 나갔다. 후임으로 온 S팀장은 그제서야 청소노동자들에게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시간꺽기, 부당한 왁스 작업, 가글값 떼어먹은 건, 짝꿍층 무임금 노동 등을 말하자 다 시정해 줄 것을 약속했다. 쌍욕을 한 관리자는 해고되었다.  

정년 건을 묻자 S팀장은 ‘원래 회사의 정년은 60인세인데 그 이상의 연령도 촉탁을 하면서 고용한 거라며 65세 이상도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노조의 힘이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게 순조롭게 해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누구 말처럼 대재벌 LG가 순둥이처럼 청소노동자의 요구를 말을 그냥 다 들어줄 리는 없었다. 


노조 가입을 한 청소노동자에게 이런저런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회사에 저항한다는 것 자체로도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회사의 공격은 그 시작만으로도 조합원들에게 공포였다. 결국 세 사람이 조합을 탈퇴했다, 당장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힘에 겨운 일상에서 ‘무서워서 못하겟어요’라는 말을 남긴 채. 

노조 활동을 하는 조합원에 대한 탄압은 조합원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 야간조 조합원에게는 주차장 파레트 기름 때를 닦는 일을 시키기도 했다.


회사는 교섭 요청에 무성의한 태도로 하나마나한 대답만 일삼았다. 

“아무 경험이 없는 내가 봐도 이 사람들은 교섭할 마음이 없어 보였어요. 교섭 자리에 나와서 우리의 요구사항에 대해 책임있는 말을 한 적이 없거든요. 시급 10원 올려주면 어쩌냐, 60원을 올려주겠다, 뭐 이런 식으로 조롱하기 일쑤였어요. 정근을 하면 수당을 주는데 결석을 하면 줄 수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집회를 하기로 했다. 점심시간마다 모여서 피켓팅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발언을 했다. 덕분에 점심은 거르기 일쑤였지만 우선은 LG청소노동자가 당한 상황을 알리는 게 필요했다.

회사의 노조 방해는 점점 심해졌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청소 다시하라 하는 감독의 지적을 받은 조합원은 무서워서 살 수 없다며 노조를 그만두겠다고도 했다. 

주변에서 듣는 말도 마음을 무겁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기업 LG와 싸워서 이길 수 있겠냐는 거지요. 한 조합원의 딸은 LG에 다니는데 우리도 못한 것을 엄마네가 어찌 할 수 있겠내면서 말렸대요.”

이길 거라고, 힘내서 싸우자는 말은 우리끼리나 하는 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만류가 수시로 기운을 빼놓기는 했지만, 그러기에 더욱 물러설 수 없는 길,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강해졌다.   

     



경고파업, 그리고 파업         

10월 14일에 경고 파업을 하고 LG트윈타워 앞에 천막을 쳤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16일부터 본격적인 파업을 하고 농성을 이어나갔다. 이에 사측은 앞으로는 교섭 약속을 하면서 정작 노조원들에게는 계약만료를 알리는 서류를 내밀었다. 

“10월 25일쯤에 직원 회의라는 걸 했어요. 여기에 저처럼 정년을 앞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거에요. 문밖에 있다가 끝날 무렵에 들어가보니까 우리가 계약이 이랬기 때문에 그만둬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청소가 뭐 부진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서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사람에게는 퇴직 위로금을 줄거라 했어요. 위로금을 얼마나 줄지는 개인적으로 면담을 하면서 결정할 것이고, 면담에 응하지 않는 사람은 그마저도 줄 수 없다고 했어요.”


이후 개인면담이 시작되었다. 노조원 한 사람이 들어가면 S팀장과 이사가 깨알 같을 글씨가 적힌 종이를 세 장을 내면서 사인을 하라고 했다.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바람에 면담을 마친 노조원에게 내용을 물을 수 밖에 없었는데, 법적으로 문제삼지 말아라 써 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내용을 못 봤다고도 했다. 공통적인 것은 그날의 면담내용은 일체 비밀에 붙일 것이며 그 자리에 있는 세 사람만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위로금은 65세 이하의 퇴직자에게 250만원부터 500만원까지 일정한 기준 없이 지들 맘대로 정해졌다. 


  

10월 14일에 경고 파업을 하고 LG트윈타워 앞에 천막을 쳤다. 

맹수가 먹잇감을 잡을 때 무리 속에서 약한 짐승을 먼저 공격하듯, 절박한 형편에 있는 사람,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을 먼저 공략했다. 그리고는 그들을 이용해 또 다른 사람을 회유해 나갔다. 위로금 받고 퇴직한 후에 다음에 들어올 용역회사인 백상에 이력서를 내면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는 것도 말도 흘렸다. 그런데 막상 이력서를 내서 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게 들리는 말이다. 노조 그림자만 밟은 사람도 받아들이기 꺼려한다는 게 소문만은 아니었다.       

노조가 LG를 이기지 못할 바에야 돈 준다고 할 때 받고 나가는 게 편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한 두명씩 돈을 받고 나가는 사람들이 생기자 조합원들의 미음은 더욱 심란해졌다. 조합원 중 20명이 위로금을 받고 떠났다. 


“노조활동도 열심히 하고 집회 때 노래도 하고 그랬던 사람이 있는데, 집이 하안동이에요 꽤 멀지요. 비노조 회원 한 명이 ‘언니, 되지도 않는 일에 고생만 하지 말고 돈 줄 때 받고 나가자’하더래요. 아마도 사무실에서 시켰겠지요. 이 언니가 마음이 흔들렸는지 그럴까 어쩔까 하는 답을 남겼는데 바로 다음 날에 S팀장이 거기까지 차를 몰고 왔더래요. 이 여자가 바로 전화를 한 거하고 볼 수 있지요. 와서는 ‘여사님 이렇게 먼 데서 출근했었냐’면서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더니 기어이 동의서를 받아갔대요.”


연대, 그 큰 힘으로   

노조를 만들고 투쟁을 해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자 가장 기운 빼는 말이 있다. 

‘우리 같은 청소노동자가 그 돈 많은 대기업 LG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들도 노조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그들도 못하는 일을 청소노동자가 할 수 있을 거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집회를 하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연대를 와서 함께 피켓을 들는 것이었다. 우리만의 일이라 여겼던 일에 자기 일처럼 분개하고 힘을 보태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더 터였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이런 투쟁을 하는 사람이 전에도 잇었고 지금도 많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그 동안 나는 뭘 보고 살았는지. 텔레비전이나 SNS를 통해 전해오던 이야기가 다 사실과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전에 나는 민주노총 투쟁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저 시간에 일을 하지 일도 안하면서 뭘 달라고 저러나 싶었거든요. 이게 다 우리 사회 언론의 문제이지요.”


농성장에 있다 보면 지나다 들렀다며 음료수나 등 간식을 넣어주고 가는 이름모를 시민들이 있다. 봉투에 든 후원금을 전달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이고 가는 LG 직원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소영 분회장의 발언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여기 LG사무실에는 노조가 없어요. 제가 집회하면서 그랬어요. 직원 여러분 불만이 없으세요? 만족하세요? 노조, 우리가 만들겠습니다. 우리가 엘지가 어디까지 추락하는지 파헤쳐보겠습니다. 시끄럽더라도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연대를 촉구하는 웹자보. 이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연대물품을 손편지와 함께 보내왔다. 



6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전국 각지에서 투쟁하는 연대 단위에서 찾아와 기자회견을 하고 문화제를 함께했다. 

“홈플러스 조합원분들이 연대오셔서 후원금과 함께 《510일》이라는 책을 주고 가셨어요. 그 책에서 공감 가는 대목이 국회의원들 믿을 거 없다는 거였습니다. 처음에 을지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다녀갈 때만 해도, 우리가 보기에 하늘 같은 국회의원이니 뭘 해결해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 때뿐이더라고요. 그 책에도 똑같은 말이 있더라구요. 결국 투쟁은 우리가 하는 거라는 걸 다시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 일이 일어났다. 

12월 31일에 해고된 청소노동자들은 로비에서 숙식을 하며 농성장을 지켰다. 설 연휴라 식당도 하지 않아 밥 먹을 곳 없었다. 설사 식당을 연다 해도 이제 직원이 아니니 밥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출입이 통제되도 난방용 전원도 꺼 놓은 상태에서 춥고 배고픈 새해를 맞이했다. 


1월 1일 아침부터 LG타워빌딩 문밖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안에서 굶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줄 음식들을 가지고 모였다. 회사 용역들은 사람은 물론 음식의 반입도 완강하게 막았다. 35명의 도시락을 싸 온 십시일반 밥묵차 회원들이 국 식는다며 빨리 밥을 들여보낼 것을 요구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러던 중 출입문 유리가 깨지고 조합원의 지인이 초코파이를 던져주었다. 용역은 이 초코파이를 빼앗아 달려가 다른 용역에게 던졌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동영상으로 찍혀 많은 사람들에게 배포되었다. 더 경악스러운 일은 십시일반 밥묵차에서 해온 도시락을 내팽개친 일이었다. 연대의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싸온 밥과 국이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밥연대 단체인 십시일반 밥묵차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이 용역들에 의해 내팽개쳐졌다.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고 이후 LG 불매운동과 함께 연대의 손길은 더 많아졌다. 사진 속에서 청소노동자로부커 초코파이를 빼앗은 용역업체 직원은 ‘먹지 마!’라고 외치고 있다.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의 반향을 일으켰다. 청소노동자의 밥상을 엎은 LG를 규탄하며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가 이어졌다. LG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LG 대리점 앞에서 ‘NO LG’ "청소노동자 쫓겨나면 LG 제품도 쫓겨나요" 피켓을 든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파업은 인생 학교, 많이 배우고 또 배운다   

그 와중에 LG측은 빌딩로비에서 농성하는 청소노동자들에게 가처분신청을 했고, 집회는 가능하나 로비에서 잠을 자는 건 안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LG측은 집회하는 청소노동자 1인당 2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는 이길 때까지 싸울 겁니다. 이제 우리는 공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들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힘들다고 멈출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박소영 분회장과 청소노동자들은 다른 투쟁 현장에 연대를 간다. 고용승계 투쟁을 하고 있는 동강병원 조리사들을 만나러 울산에도 가고 김진숙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 촛불집회에도 찹석하는 등 받은 만큼은 아닐지라도 열심히 연대활동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것은 이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고용승계’입니다. 누구 좋으라고 물러납니까? 우리가 해내겠습니다. 쟁취하겠습니다. 모두가 안 된다는 싸움이었는데 우리가 해낸다면 얼마나 장하다 하겠어요?”


지금도 연대의 손길은 계속되고 있다. 십시일반 밥묵차, 다른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우리밥연대가 도시락을 직접 만들어 가져오고 한끼 식사비를 연대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지방에서 직접 쿠키를 구워 손편지와 보내기도 한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고용승계가 이뤄지고 노조 활동이 보장되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속속 모아지고 있다.

LG 청소노동자 노조원들에게 도시락을 넣어주는 십시일반 밥묵차, 우리밥연대,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의 밥연대. 이외에도 한 끼 식사비를 보내준 분들, 과자 음료수 등 간식을 보내준 분들이 있어 이 싸움은 이미 멈출 수 없는 싸움이 되었다고 박소영 분회장은 말한다.  


“파업은 인생 학교라는 생각이 들어요. 파업 투쟁을 안했더라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것들을 엄청나게 배우고 있어요. 세상이 어떤지 사람이 어떤지에 대해서요. 파업 투쟁을 하기 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이제는 마이크 잡고 발언을 아주 잘해요. 생각이 달리지고 삶이 달라지는 거지요.”


이제는 파업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파업 투쟁을 통해 얻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보았고, 혼자가 아닌 함께 가야 할 길은 배운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의외의 길은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 줄 미리 알았노라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택한 길은 2년 전만 해도 예측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부당한 해고를 당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에게 ‘고용승계’ 쟁취 투쟁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박소영 분회장은 이러한 투쟁이 들불처럼 번져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