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 | 밥통 85호

2021.06 | 82호밥알단 연대기 | ‘밥’과 함께 연대를 /알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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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알단 연대기 ]


‘밥’과 함께 연대를

알튀세(장애인인권영화제 활동가)


열아홉 번째 서울장애인권영화제가 개막했다. 슬로건은 "돌아가지 않겠다" - 장애에 대한 차별이 일상이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붕괴되었고, 그것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다수 사람들의 소망과는 별개로, 많은 장애인들의 일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마비되어 있었다. 비장애인들이 누리는 사소한 일상, 소소한 행복은 누구에게나 속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소확행이라 일컫는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 누군가는 온갖 고생을 해야 한다.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매년 해외여행을 가는 나라가 됐다고는 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집 앞 산책조차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 이전이건 이후 건, 많은 장애인들에게는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회인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다수 비장애인들의 바람에 대응하여, 영화제는 차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슬로건을 외치기로 했다.


나에게는 장애를 가진 가족이 하나 있다. 평생을 장애로 힘들어했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정말 애썼다. 그렇게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남부러울 것 없는, 소위 '스펙'을 쌓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어떤 나라는(아마 미국이이었을 것이다) 장애인이 학교에 입학하면 그 한 명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더라. 만약 그런 나라에 태어났으면 나도 조금은 덜 치열하게, 그래서 덜 힘들게 살았을지도 몰라" 그때 다시 생각했다. 그가 보였던 평생의 애씀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갈망에서 기인한 노력이 아닌, 자신이 가진 장애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한 고통스러운 몸부림이었다.


장애는 분명 사회적 개념이다. 어느 사회에서는 스스로 인식조차 않는 무엇이, 어느 사회에서는 누군가를 죽을 만큼 괴롭게 하는 장애가 된다. 사회적 문제는 사회의 개혁을 통해서만 해결될 문제다. 장애를 가진 개개인이 노력해서 그것을 극복한다고 한들, 사실상 근원적인 차원에서의 극복은 불가능할뿐더러, 그것이 장애에 대한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에 정당성을 부여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애초에, 그 구성원에게 일상을 위해 그토록 힘겨운 노력을 요구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영화제가 무슨 이유로 보기에 따라 꽤나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돌아가지 않겠다"라는 슬로건을 취하고 있는지, 영화에서 보이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왜 그리도 강경한지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장애인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은 너무 암담하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문제는 저항과 연대를 통한 사회적 개혁을 통해서만 해결이 된다. 영화제를 통해 이러한 연대의식이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자원활동가로 참가하게 되었다. 영화제에 연대하는 모든 이들의 생각이 이와 같을 것이다. 그리고 ‘밥통’ 활동가들도 그러한 마음일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밥통’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원래가 여러 현장에 대한 나의 이해가 미미한 탓이겠으나, 밥통의 연대를 보면서 이러한 방식으로 현장에 연대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밥’은 식사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때면, 우리는 으레 ‘밥 한 끼 하자’고 하지 않던가. 밥을 함께 먹는 것은 가장 근원적인 차원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는 행위이고, 이는 나아가 우리의 연대와 결속을 다지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인지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밥통에 연대하는 시간에 나는 영화제 기간을 통틀어 가장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다른 활동가들이 열심히 준비해 온 반찬들을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는 것뿐이었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지만, ‘밥’을 나눈다는, 그 근원적인 차원의 연대 행위를 함께 한다는 것에서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나아가 별도의 채식 도시락이 준비된 모습을 보면서, 활동가들의 세심함과 애씀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개장과 달걀 스크램블이 너무 맛있어서 행복했다. 바라건대, 앞으로 많은 현장에서 ‘밥통’과 만나기를, 또 내가 ‘밥통’에 연대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때마다 현장에서 각자의 아픔과 삶을 겻들인 밥을 나누며, 우리의 연대를 다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