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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 | 67호여기 사람이 있다 | 만두대첩 -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213일차, 연대로 희망을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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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이 있다]


만두대첩 

-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213일차, 연대로 희망을 빚다!

조선아(밥알단, 삼성고공농성 국제연대)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1월 8일, 강남역 한복판에서는 너무나도 새롭고 희한한 연대의 한마당이 펼쳐졌습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이 주축이 되어 평등학부모회, 팔뚝두부가 협찬을 한 ‘만두대첩’이 바로 그것입니다. 


2주 전, 세모의 빛이 저무는 12월 30일은 해고투쟁을 7년째 진행하면서도 늘 삼성고공농성의 최선두에서 연대투쟁하고 있는 박미희 동지와 함께하는 기아현대 본사 앞 집회투쟁이 있었다지요. 그날 기아 사측의 악랄한 폭언과 탄압에 맞서 싸우던 동지들이 '아, 우리 맨날 집회만 하지 말고 좀 맛난 것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시발이 되었다 합니다. 싸움은 길고, 투쟁은 늘 힘겹지만 모두 먹고 살자고 하는 짓, 무엇보다 정성스런 집밥에 대한 그리움과 설이 다가오는데 따끈한 떡만두국 한 그릇을 고공농성 철탑의 동지에게 올리고 싶은 마음이 '그래, 그래, 함 해보자'라고 모였다 합니다.


그리고, 1월 8일 강남역 8번 출구에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아시죠? 농성장이란 공간은 늘 협소하고 춥고 요리를 하기에는 너무도 안 어울리는 공간이란 것을요. 요리라고 하면 티비에 나오는 유명 쉐프의 대리석 키친 상판과 반짝이는 조리도구, 그릇이 부딪힐 때 나는 경쾌한 소리가 실로폰 소리처럼 울리는 것, 그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주방시설은 갖춰져야 할 텐데, 이 분들의 시도는 모험 같았기도 했고 객기 같기도 했습니다.


한광주 밥통 이사장이 밤새 준비한 김치와 고기, 파와 마늘, 당면 등 식재료와 업소에서나 쓸 법한 커다란 양푼과 쟁반을 앞에 두고 첨엔 찰흙을 앞에 두고 '생각하는 사람'의 초본을 떠야했던 A.로댕처럼 막막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곧 칼과 도마를 들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다닥다닥 재료를 칼로 다지며,

'이것은 삼성이재용이여~', '지금 다지는 것은 노동탄압이라구'라는 등의 농담 속에서도 투쟁에 단련된 이들의 말은, 단어는, 어쩌면 기나긴 투쟁의 울분과 설움을 갈아갈아 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만두피 속에 넣고 있는 것은 희망이고 사랑이고 해방'이라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곧이어 펄펄 끓는 육수에 만두를 삶고 떡을 익혔습니다. '손등이 뜨거운 물에 데이기도 하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했던 동지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500여개의 만두를 빚는 과정은 그렇게 투쟁으로 주먹만 움켜쥐던 굳은 손에 희망의 빛을 쌓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강남역 광장을 왁자지껄한 웃음과 새해인사로 가득채운 만두 나눔에 있었습니다. 200일이 오기 전에 고공농성투쟁 승리를 결의하고, 지난 해 자신의 온갖 열정과 힘을 보탰던 동지들의 마음 속엔 속절없이 새해가 오고 또다른 일상 속에 집회의 동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했던 걱정이 존재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염려가 기우였음을 뜨거운 만두를 입이 터지게 밀어넣으며 깨달았습니다. 강남역 광장에서 만둣국을 나누는 얼굴들에는 환한 미소만 가득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실제로 강남역 가두리양식장을 해방구로 만들었습니다.


누구는 말합니다.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우리는 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가기만 하는 것이 승리를 향한 것일까.” 

우리는 그날 확인했습니다. 화려한 삼성의 유리건물 앞에서 투박한 만두를 씹으며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동지들이 모이는 것이 힘이고 희망이고 바로 승리라고. 몸이 아플 때 가장 생각나는 것이 어릴 적 엄마의 정성 가득한 시래기죽이었듯이, 투쟁이 힘들고 지칠 때, 고개 숙이고 지쳐 어깨를 떨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무엇이든 간절한 것, 필요한 것을 하면 된다고요. 그날의 ‘만두빚어 나눔’은, 그래서 힘을 받고 또 투쟁을 결의하게 했던 바로 '만두대첩'이었습니다. 


이제 300일을 향해가는 김용희 동지의 고공농성은 더욱 절박하게 펼쳐질 것이고 앞으로도 고공농성 공대위의 투쟁은 함께 가열차게 진행될 것입니다. 때로 울게도 되고, 외로움에 몸서리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 함께 나누었던 '만두대첩'의 기억은 한겨울 너무나 뜨거운 기억으로, 입 안을 데우고, 뱃속을 따뜻하게 하고, 심장을 뛰게 했던,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힘으로 남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밥통 동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