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024.03 | 밥통 115호

20.11 | 75호밥알단연대기 | 꼭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하는 밥알단 /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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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알단 연대기 ]


꼭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하는 밥알단

김미연(밥알단, 강릉 전교조 교사)




밥통을 만나기 전까지는 여건이 되는 대로 여러 투쟁 현장에 연대하러 가면서 식사에 대한 부분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면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투쟁과 실천을 하는 과정에서 식사시간이 되면 따뜻한 밥 배불리 먹고 든든하게 에너지를 충전해 앞으로 나아갔던 경험은 많았는데,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10월 24일 춘천에서 진실버스가 온다길래 아침부터 강릉에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교사로서 늘 마음 한켠에 실천하지 못함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가족분들과의 간담회가 끝난 뒤의 일정은 자전거 선전전이었다. 청소년기에 외부 활동에 큰 흥미가 없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 이다지도 후회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 자전거 선전전을 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하던 차에 "미연쌤~ 밥통 자원봉사 좀 부탁드려요~"라는 부탁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밥통을 처음 만나고 감사하고 보람되게도 밥알단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동지 선생님들 네 분과 함께 춘천시청 앞에 도착하자 노란색에 빨간 로고가 박힌 귀여운 밥통차가 보였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왔지만 평소 가사노동과는 거리가 좀 있던 나이기에 쭈뼛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한광주 이사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며, 오늘 밥알단분들이 많아서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날의 우리가 할 일은 두 시간 넘게 고되게 자전거를 타고 실천을 진행한 동지들이 빠르고 간편하게 그러나 맛있게 식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하는 코로나19 상황이기에 평소 밥차처럼 대면 배식이 아닌 도시락의 형태로 만들기로 하였다. 역할을 나누어 자신이 맡은 분공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익숙하신 선생님들께서 네 가지의 반찬반찬을 하나씩 맡아 놀랍고도 빠른 속도로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가 맡은 역할을 잘 하는 것이 투쟁과 실천에 보람을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도시락을 만들 때는 정신이 없고 집중하느라 별다른 감상이 없었고, 다 만들어진 도시락이 예쁘게 쌓여있는 모습은 조금 뿌듯했었다. 그러나 밥알단의 진정한 보람은 실천을 마치고 돌아온 동지들을 맞이하는 것에서부터였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실천한 동지들이 달게 비워내는 도시락을 보면서 오로지 거리에 나서서 구호를 외치는 것만이 투쟁이 아니라는 점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면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이 가시화되지 않고, 노동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부분에서 늘 문제의식과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날 내가 한 밥알단 활동도 그러했다. 투쟁의 선봉에 서는 것은 아니지만 앞장선 동지들의 뒤에서 꼭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하는 것, 이 역시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한 운동이고 투쟁이고 실천이라는 점. 


결국 자전거를 못타는 것이 밥통을 만나고 밥알단으로서의 경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주었으니, 오히려 기쁘고 보람되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