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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 68호밥통 칼럼 |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배제와 소외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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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통 칼럼]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배제와 소외 바이러스

한광주(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이사장)


지난 달부터 기승을 부린 코로나19로 인해 집회가 하나둘씩 취소되면서 밥통 출동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될 때만 해도 “저걸 어쩌나,,,”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저 남의 나라 남의 일로만 생각했었다. 더 퍼지지 않도록, 그리하여 내가 사는 이 곳까지만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이제야 당시 우한 내 사람들의 절박했던 상황과 고통에 무심했었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2월 26일에 소성리에 출동할 요량으로 경북 밥알단 홍정미님 김혜란님 경미경님과 이런저런 논의를 해오던 차였다. 각종 나물로 비빔밥을 하고 굴비를 구워 드리자고, 계란 후라이 대신 담박한 계란찜을 했으면 좋겠다고, 비빔밥에는 이러저러한 토핑을 준비하자고 논의하면서 신났더랬다. 

경북의 세 밥알단분들은 지난 2월 밥통이 구미 아사히에 출동했을 때도,  그 전달인 1월에 영남대병원 고공농성장에 출동했을 때도 지역에서 준비를 다해 놓고 밥차를 맞이해 주시던 분들이다. 막상 대구 경북에 코로나19가 집중 창궐하여 감염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다보니 도시 전체가 사람이 발길이 끊기고, 홍정미님이 이제 막 이전 개업한 커피숍도 경미경님이 아침마다 가는 시장도 난감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걸음에 달려가봐도 시원찮을 마당에 코로나19는 그 길마저 막아버린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글에 있던 이런 글토막이 생각났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코로나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옆 사람을 멀리하고 의심하게 한다는 점이다. 길을 가도 나를 스쳐가는 사람이 혹시나 확진자일까 의심을 하고,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사람의 날숨에 섞여있을 성분을 의심하게 하는 게 지금 코로나19의 난국이다. 억울함에 통곡하는 동지가 있는데 가서 끌어안기는 언감생심, 손 내미는 행위 조차도 망설이게 만든다. 그 와중에 지원의 손길 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은 목숨을 담보한 나홀로 자가격리를 당하고 이에 대처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에 울분을 토하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단절과 소외 그리고 배제의 바이러스가 당당하게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그게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우한 교포가 임시로 격리되어 머물던 아산인재개발원에 ‘결사반대’에서 ‘환영’ ‘응원’으로 그 분위기가 바뀐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퀭한 얼굴에 부르튼 입술로 매일 상황 보고를 하던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에 대한 응원이 SNS에 올라오고 ‘힘내라 대한민국’ ‘힘내라 질병관리본부’ ‘힘내라 대구 경북’ 등의 해시태그가 올라온다.


우리 밥통의 홍정미 밥알단님은 자신의 가게에 이런 글을 붙여 놓았다. 

 


개인 방역에 꼭 필요한 일이라면서 마스크를 꼭 쓰고 다니라고 겁을 주던 정부는 정작 국민들에게 마스크 하나 제대로 살 기회를 주지 못했다. 누구는 마스크 몇 만장을 쟁여 놓았다는 소문과 보도가 나돌고, 그거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분위기에 마스크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사람들은 마스크 파는 곳을 찾아 새벽부터 줄을 선다. 그래도 허탕치고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와서 줄을 선 사람을 원망할까, 마스크 하나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정부를 원망할까, 아님 마스크 사재기와 대량 수출로 돈벌이에 눈 먼 몇몇 상인들을 원망할까?

이럴 때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해 마스크 구입을 자제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면 그 줄에 있는 사람 중 다수는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까?        


이 와중에도 쉬지 못할 일이 있고, 접지 못할 일이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한다고 집회의 이유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강남역 사거리에는 삼성에서 해고되어 고공에서 270일을 넘기고 있는 김용희 노동자가 있고, 삼성생명 2층 각장에는 보암모(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 회원들이 점거농성을 50일을 넘기고 있다. 65세 이후 활동지원을 금지하는 법안에 저항하는 등 장애 인권 활동가들의 목청은 허공을 떠돌고 마사회 문중원 열사의 장례식은 사망 100일은 넘도록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제반 여건들이 서로에게 선을 긋고 넘어가지 못하도록 한다 해도, 그 선의 성격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 선을 잘 넘기는 일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기본의 방법대로가 아니더라도 아닌 다른 안전한 방법을 찾아 밥차의 시동을 걸어야겠다.  

취소된 집회 이외에도 밥통이 가야 할 곳은 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안전해야 함은 물론이다.